“자식같은 기업 1개월내 처분할 수 없어”

“자식같은 기업 1개월내 처분할 수 없어”

입력 2013-03-19 00:00
수정 2013-03-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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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 사퇴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18일 갑자기 사의를 밝힌 이유로는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들었다. 황 내정자는 지난 15일 임명 직후 “부족한 사람이 중소기업청장이 됐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토양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중소기업인에게 희망을 주는 청장이 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군 회사(주성엔지니어링)의 주식 처리문제였다. 그는 오후 주성엔지니어링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식 정리의 절차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중기청장직을 수락해 물의를 야기한 것은 내 불찰이고 책임”이라며 “젊음을 바쳐 자식 같이 키워온 기업을 1개월이라는 법적 시한에 매여서 아무에게나 처분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제14조 4항은 재산공개 대상자(국회의원, 장·차관, 1급 이상 공직자) 또는 금융위원회 소속 4급 이상 공무원은 본인 및 이해 관계자(배우자 및 본인의 직계존비속)의 보유주식이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주식을 모두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또 백지신탁 계약을 체결하면 금융기관은 주식을 60일 내에 처분토록 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황 내정자가 제의를 받고 백지신탁을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고, 백지신탁의 의미를 잠시 맡겨 놓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식을 처분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그가 고민을 깊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황 내정자와는 달리 주식을 처분하고 공직을 택한 이도 있었다. 2005년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의 경우 65억원 상당의 주식을 팔았다. 주식 부자가 많은 국회의원들은 백지신탁을 빠져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시가 3조원대의 현대중공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서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만 소속되지 않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결정을 받았다.

주식 백지신탁을 골자로 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게 박근혜 대통령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 때문에 대통령이 된 뒤 공직 임명에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주식 백지신탁 제도 도입 논의는 2002년 대선 때 시작됐다. 이어 2004년 권영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백지신탁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을 대표발의하면서 성문화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정병국·서상기 의원 등과 함께 이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공직자윤리법 문제가 대두되면서 차기 중소기업청장 인선도 복잡해지게 됐다. 새 정부의 화두인 창조경제와 관련해 경험 있는 외부 전문가 수혈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됐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후임 중기청장 검증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늦어도 2∼3일 안에 후임자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임에는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 부회장과 김순철 현 중기청 차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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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백지신탁 고위 공직자로 임명된 사람이 보유중인 주식을 매각하거나 공직과 무관한 대리인에게 맡기도록 한 제도.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주식 거래 등에 활용하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다. 미국은 1978년 모든 연방 공무원에게 이를 의무화했다.

2013-03-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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