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 영결식 엄수

故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 영결식 엄수

입력 2013-11-15 00:00
업데이트 201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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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시절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서 대변”

역대 최장수 외교수장인 고(故)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의 영결식이 14일 서울 풍납동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외교부장(葬)으로 치러졌다.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시작된 영결식은 역대 외교부 장관들과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묵념과 고인 약력 소개, 장례위원장 추모사, 유족대표 인사, 헌화 등 순으로 약 30분간 진행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고 박동진 장관은 한국 현대 외교사의 산 증인”이라며 “고인은 1951년 주미국대사관에서 외교관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주제네바대사와 주유엔대사, 주미국대사를 지내며 어려웠던 시절의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서 대변했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고인은 험난한 국내외 정세 파고 속에서 국익 신장에 큰 족적을 남겼다”며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 실무자로 참가한 이래 외교장관과 주미대사로서 크고 작은 문제를 극복하고 한미관계를 원만히 이끌어 현재 한미동맹 초석을 닦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국립서울 현충원에 안장됐다.

고인은 외무부에서 의전국장과 차관, 주월남·주브라질·주제네바·주유엔 대사 등을 지냈으며 1975년 12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의해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1980년 9월까지 4년 9개월가량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도덕주의를 표방한 미국 카터 행정부와 유신체제 간 대립으로 불편한 한미 관계를 잘 조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76년 소위 ‘코리아게이트’로 불거진 한미 외교갈등을 수습하는데도 역할을 했다.

고인은 1979년 10·26 사건과 뒤이어 벌어진 신군부에 의한 12·12 쿠데타 당시 외무부 장관으로서 대미 관계 등을 관리했고,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 때도 현직 장관으로서 격동의 외교 현장을 지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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