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이라 생각할수도”·“청소년 그런 짓 자주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6일 열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증인 출석 문제를 놓고 여야 법사위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논의하는 모습.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지난 1월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 기준을 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은 한 달도 안 돼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에 올랐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 기술을 활용해 영상물을 퍼뜨리면 죄를 묻고, 영리목적일 경우엔 가중처벌한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 법사위원은 2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디지털성범죄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부분을 논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진행된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참석자들은 n번방 사건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예 무슨 사건인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딥페이크 영상물 처벌을 논하는 과정에선 용납하기 힘든 발언도 쏟아졌다.
합성 음란물 유통에 대한 새로운 처벌 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미래통합당 김도읍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을 다 만드냐”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디지털성범죄물을 놓고 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긴다, 이것까지 (처벌로) 갈 거냐”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나 혼자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중당 여성 청년 후보 등이 23일 국회 의원회관 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실 앞에서 “법사위 위원들이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을 졸속처리했다”며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회의록을 보면 정치인, 관료들은 이번 n번방 사건을 단순히 음란 동영상이 유포된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 사람의 인생이 파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입법·사법부가 민의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으니 n번방 같은 잔혹한 범죄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들이 디지털성범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마련 돼 있는 현행법 하에서 처벌을 더 강력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법사위원인 민생당 채이배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이 n번방을 운영한 ‘와치맨’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고 한다”며 “세계 최대 규모 아동성착취 사이트를 운영했던 손정우는 고작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고,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현행법을 적극적으로 집행·해석·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현행법으로 n번방의 운영자나 가입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처럼 설명하면, 그렇지 않아도 성범죄에 보수적인 검찰이나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할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박사’ 조주빈(25)의 봉사활동 이력.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경찰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법조인·대학교수·정신과 의사·심리학자)으로 이뤄진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1시간 30여 분 논의 끝에 조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피의자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라며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피해자가 무려 70여 명에 이르는 등 범죄가 중대할 뿐 아니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또 “피의자 인권 및 피의자의 가족, 주변인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등 공개 제한 사유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했다”며 “그럼에도 국민의 알권리,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피의자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