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입력 2010-04-08 00:00
업데이트 2010-04-0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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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침몰 13일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최원일 함장을 포함한 생존 승조원 58명 가운데 57명이 7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신은총 하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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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천안함 생존 승조원 57명이 사고원인 규명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원일 함장은 실종자들을 언급한 뒤 눈물을 훔치고(왼쪽), 정다운 중위는 고개를 떨어뜨린채 눈자위를 누르고 있다(왼쪽 두번째). 환자복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다른 장병들도 실종된 동료 생각에 눈물을 훔치거나 괴로운 듯 눈을 감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천안함 생존 승조원 57명이 사고원인 규명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원일 함장은 실종자들을 언급한 뒤 눈물을 훔치고(왼쪽), 정다운 중위는 고개를 떨어뜨린채 눈자위를 누르고 있다(왼쪽 두번째). 환자복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다른 장병들도 실종된 동료 생각에 눈물을 훔치거나 괴로운 듯 눈을 감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사고발생 보름이 다 돼가는데 가족들은 실종 장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함장도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최원일 함장) 실종된 장병들이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갖고, 복귀신고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고 해역에서의 주임무는 무엇이었나.

-(최 함장) 2008년 8월에 부임해 20개월 근무했다.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16회 정도 경비했다. 주요 임무는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정확한 사고발생 시간은

→사고 시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몇시 쯤 사고가 났나.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한 시간이 21시24분이다. 그 시간에 대해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다.

→9시16분쯤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큰 소음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들린 게 있나.

-(통신장 허순행 상사) 9시14분부터 18분까지 통화를 했다. 함 내부에서 들렸다면 분명 전화를 끊고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들렸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9시16분 당시 좌현 함교 외부 당직이었다. 16분대에 일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디젤엔진이나 기관실 등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나.

-(정종욱 상사) 함정이 6노트(11㎞) 저속일 때는 디젤엔진으로 기동한다. 군생활 17년 됐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전혀 들은 바 없다.

→포술장의 최초 보고 내용과 ‘피격’이라고 한 것의 의미는.

-(최 함장) 비상통신기와 휴대전화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가 계속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현장 구조가 어려워 옆에 허순행 상사를 위치시켜 지시한 내용을 전파하라고 했다. ‘뭐에 맞은 것 같고 충격이 너무 컸다.’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김광보 중위) 밖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함대 직통실에 보고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직통실 전화가 아니라 군부대 교환대를 이용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 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처한 위치나 상황, 구조요청 등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안난다.

→함장이 사고시각을 침몰 다음날 27일 9시25분으로 했다가 28일 번복한 이유는.

-(최 함장) 당시 전술지휘체계(KNTDS) 컴퓨터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측화면에서 오후 9시23분으로 확인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 보좌하고 있었다.

●사고 순간, 꽝 소리는 두번

→‘꽝’ 소리가 두 번 났는데, 파편을 본 사람 있나.

-(전탐장 김수길 상사) 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꽝, 꽝’ 소리를 두번 느꼈다.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줄 알고 제가 바로 전탐실로 향했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이 났다고 발표가 됐다.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병기장 오성탁 상사)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암흑세계였다. 아무 것도 안보였다.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만져보니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순간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쾅’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컸다. 문 주위의 컴퓨터책상이 모두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가족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잡히는 집기를 모두 치워서 15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생각했다.

→화약 냄새라든지 폭발 징후라고 느꼈던 것들이 있었나.

-(오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라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안났다.

●사고직후 물기둥은 못봐

→갑판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물기둥은 봤나

-(김 상사) 침실에 들어가는데 ‘쿵’ 소리 후 3∼5초 있다가 다시 ‘쾅’소리 났다. 90도로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 소화호스 타고 5∼7분 걸려 탈출하고 난 뒤 달빛 보고 외부로 향하려고 하는데 외부 함미가 없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함정은 야간이 되면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적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각종 문을 닫고 있다. 기본적인 항해등만 켜고 항해해 물기둥은 실제적으로 볼 수 없다.

→천안함이 오래됐다. 물이 새는 등 내부 문제는 없었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물이 샌다고 하는 경우는 잘 모르는 대원들이 함정 내부에 온도차에 의해서 파이프에 물이 맺히는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외부에서 물이 스며드는 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안전점검 받은 일자는.

-(이 대위) 부임한 지 50일 가량 됐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항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니까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본다.

●해경 구조선에서 지휘보고

→사고 후 구조대가 오기까지 한시간 동안 함장 지시는. 뭐하고 기다렸나.

-(박 대위) 함교에서 좌현 통로로 외부로 나온 뒤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 구조세력이 왔을때 선체에 접근을 해서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이함시킬지 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통신관 박세준 중위) 전투상황실 당직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많은 장비들이 떨어졌다. 전탐실에서 끼어있었던 하사 2명을 구조한 뒤 올라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했다.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함장실 앞에 있는 외부 도어를 풀고 가장 먼저 올라왔다. 확인 결과 함미가 안보였다. 여러 대원들이 갑판 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이 잠겨 있어서 풀려고 노력했고 함장이 구출된 뒤 인원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통신망으로 상황전파 후 침착하게 함장 지시에 따라 대처하면서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사병들 가운데 함미를 사고 직후 본사람 있나. 구조 직후 함장이 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나.

-(최 함장) 해경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나는 사관실로 이동했고, 병들은 치료 휴식을 위해 해경정에 있는 침실에 배치됐다. 해경에서 지휘보고가 이뤄졌다. 참모총장, 작전사령관과 통화해 보고를 했다. 휴대전화 회수는 사실이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 곳에서 이뤄졌고 당시 피흘리고 다리 골절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란방지 차원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암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배가 출렁인다.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상황시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최 함장) 당시는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사고원인은 차후였다. 오후 10시32분 통화할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충격으로 느꼈다.

→어뢰, 기뢰, 암초, 내부폭발, 선체폭발 등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최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며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

●사고당시는 정상근무중

→사고 직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 비상상황인가 휴식상황인가.

-(박 대위) 함교 당직사관으로서 정상근무 중이었다.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나한테 보고가 됐을 거다. 따로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 직전이나 혹은 그 이전이라도 함정의 소나(음파탐지기)에 이상징후 포착된 것 있나.

-(홍승현 하사) 특별한 음탐신호가 없었다. 당직자는 정상근무였다.

→사고직전 외부와 통화했던 승조원들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 끊을 만한 상황이 있었나.

-(허 상사) 오후 9시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라서 관련해서 통화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주라고 했다. 이상 상황은 없었고 바로 통신실로 복귀했다.

-(기관장 이채권 대위) 기관장이 상황이 있거나 주로 근무하는 위치는 기관조정실이다. 당시 정말 특별상황이 있었다면 고속추진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당연히 기관조정실에 있어야한다.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후타실에 5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 갔을 것으로 보나.

-(오 상사)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거기 가 있는다. 사고발생 한시간 반 전에 가서 늘 운동했었다. 그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후타실에 안 갔다. 추정되는 5명은 항상 운동하는 인원이다.

→함미부근 후타실에서 운동할때 어떤 복장으로 가나.

-(전준영 병장)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 그랬을 거다. 나는 침실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 없었기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2010-04-0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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