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주년] 두 세대가 보는 4·19

[4·19혁명 50주년] 두 세대가 보는 4·19

입력 2010-04-19 00:00
업데이트 2010-04-19 00:4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신세대가 보는 4·19>

-직장인 박양일씨(26세)-

근현대사 제대로 안배워 말하기 조심스러워

이미지 확대
내 또래가 그러하듯 4·19혁명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민주주의, 자유, 저항 이런 단어들이 막연하게 떠오르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막막하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국사 시간에 들어보긴 했지만 대부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다 ‘장준하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동북아역사장정을 다녀오면서 4·19혁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해마다 4월이면 신문,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 책으로 접하는 것보다 더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한 사건들도 그러면서 알게 됐다.

요즘 세대는 의식도 없고 실천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민주화와 함께 태어난 세대라 대부분 정치·사회 제도 등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4·19혁명이 민주주의의 도화선이 됐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민주화된 세상에서 살 수 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김호빈 강원대 2학년(20세)-

독재정권 항거 희생정신 잊혀져가 안타까워

이미지 확대
솔직히 4·19혁명을 잘 몰라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봤다. 1960년 3월15일의 부정선거가 발단이 돼 일어난 혁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일로 나보다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 나갔고 이에 시민들도 합류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나는 일단 4·19 혁명이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50년 전인 1960년 4월19일, 그 시절 학생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 후로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에도 기꺼이 거리고 나섰다. 지금의 자유나 편리한 사회제도 등은 50년 전 수많은 학생 및 시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의무가 아닌 권리니까 하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선조들의 희생을 어쩌면 헛되게 하고 있다. 4·19는 대학생 사이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4·19세대의 메시지>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68세)-

민족 등 서사적 고민에 괴로워할 줄 알아야

이미지 확대
독재 정권 물러나라고 외치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경무대 앞에 낭자하던 선혈의 모습이 선연한데 벌써 50년의 세월이 지났다니 세월의 빠름이 무상하다. 국민적 애도의 기간에 기념일을 맞고 보니 마음이 더욱 스산하다.

4·19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역사에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4·19혁명이야말로 주역들이 권력을 탐내지 않은 유일한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가 조르주 당통의 고백에 따르면, ‘혁명은 어차피 혁명가를 타도한다.’고 하는데, 4·19혁명은 혁명에 성공한 주역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무욕의 혁명’ 그 자체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4·19혁명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요즘 젊은이들이 사랑·취업·돈·학점 등 서정적 자아에 몰두하는 엄지족이라고 불리울지 모르지만, 그들도 가끔은 50년 전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역사·정의와 같은 서사적 고민에 괴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노정선 YMCA 통일위원장(65세)-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또다른 혁명 이뤄내야

이미지 확대
아침 수업시간에 유리창이 두 장 깨졌다. ‘누군가 엄청나게 멀리 던지기를 잘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것은 돌이 아니라 총알이었다. 당시 경무대(청와대)와 2㎞ 정도 떨어져 있던 우리 학교에 유탄이 날아온 것이었다. 경무대 앞길에서 경기고등학교 학생 둘이 경찰사격으로 사망했다.

오늘의 청년들도 정의와 통일 앞에 용감하다. 그러나 선배들은 피를 부르는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통일을 외쳤다. 나는 지금 청년들이 정의를 실천하고, 민주를 위해 부정·부패에 저항하길 바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고, 남북이 서로 적대적인 이 현실을 바꿔 놓아야 한다. 남북 경제 통일을 이뤄내고, 민족이 단결해 외부의 책략으로 대리전쟁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4·19정신 그대로 이어 받아 부패하고 부정한 것에 저항하는 또 다른 혁명을 이뤄내야 민족이 살아 남게 될 것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10-04-19 4면
많이 본 뉴스
성심당 임대료 갈등, 당신의 생각은?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이자 대전 명물로 꼽히는 ‘성심당’의 임대료 논란이 뜨겁습니다. 성심당은 월 매출의 4%인 1억원의 월 임대료를 내왔는데, 코레일유통은 규정에 따라 월 매출의 17%인 4억 4000만원을 임대료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성심당 측은 임대료 인상이 너무 과도하다고 맞섰고, 코레일유통은 전국 기차역 내 상업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성심당에만 특혜를 줄 순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대료 갈등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인상해야 한다
현재의 임대료 1억원을 유지해야 한다
협의로 적정 임대료를 도출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