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乙의 눈물’

협력사 ‘乙의 눈물’

입력 2011-05-06 00:00
수정 2011-05-06 00: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백화점 연장영업 확산 ‘억지야근’ 파견직원 수당 못받고 육아 포기

지난달까지 신세계백화점 죽전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한 A(33)씨. 그녀는 “저요? 백화점과 협력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죠.”라고 빤히 쳐다본다. 백화점 연장영업으로 ‘억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A씨는 “우리 같은 협력사 직원들은 법에 있는 정당한 수당조차 요구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한탄했다. 찍히면 파견 직원 자리조차 온전히 보전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백하는 ‘을(乙)의 눈물’로 해석된다.

5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2007년 경기 용인시 죽전의 신세계백화점에서 시작된 영업시간 연장이 다른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장영업은 백화점 사정에 따라 1~3시간씩 하고 있다. 이 같은 연장영업은 백화점 협력사 파견 직원들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백화점의 방침을 협력회사가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형태다. 오후 8시까지로 돼 있는 영업시간이 밤 9~11시로 연장되면 ‘을’인 협력사 직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억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야근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화점 협력사 관계자는 “수당을 받는 곳은 10곳 중 1~2곳”이라면서 “죽전의 신세계백화점 명품 가방업체 직원들도 연장근무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겨우 수당을 받았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백화점들은 협력사 직원은 백화점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협력사들은 “연장영업이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수당 지급이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피해는 파견 직원들의 몫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면서 “법적으로 협력사에 책임이 있지만 백화점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연장영업을 하는 만큼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야간·휴일 근무에 통상임금의 150%를 지불토록 하고 있다.

수당도 수당이지만 늘어난 밤 영업으로 신체리듬이 깨지고 출산과 육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협력사 파견 직원은 판매직 특성상 여성 비율이 90%를 넘는다.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B(34)씨는 “엄마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다. 퇴근해 집에 가면 밤 12시다. 가끔 애들이 엄마 얼굴 보겠다며 잠을 안 자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고객들의 편의도 좋지만 일이 너무 늦게 끝나다보니 일하는 동안 임신과 출산을 포기한 주변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2011-05-06 1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