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현장 전경버스 안에선 어떤 일이

시위현장 전경버스 안에선 어떤 일이

입력 2011-10-25 00:00
수정 2011-10-2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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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구타 끝에 사망 사고…집회·시위현장 충돌 부추기는 악순환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의경 제도 폐지 권고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내부 폭력이나 가혹 행위가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는 한 뿌리 뽑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5일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를 보면 선임자는 시위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 안에서 암기 사항을 외우지 못했다거나 점심을 빨리 먹지 않는다, 출동 장비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임병의 얼굴과 머리, 가슴을 수차례 때린 사례가 빈번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집회ㆍ시위 현장에서 후임 전·의경은 선임에게 구타, 가혹행위를 상습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폭행당한 후임 전·의경은 집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여건이 갖춰졌던 셈이어서 충돌 사태 등 불상사의 빌미를 경찰이 방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사 결과 선임에게 상습 구타를 당하다 혈액암이 발병해 사망한 박모 의경은 내무반이나 취사실, 행정반 사무실뿐 아니라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 중이던 버스 안에서도 다른 후임들과 함께 수차례 구타를 당했다.

가해 선임은 박 의경이 배치받은 지 한 달 만인 2009년 6월 당진 현대제철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 중이던 버스 안에서 암기 사항을 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 의경과 다른 후임의 얼굴과 머리를 손바닥으로 10여 차례 때렸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선임은 진압 장구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버스 안에서 뺨과 가슴을 또 때렸다.

점심을 빨리 먹으라며, 시위 진압 당시 실수를 했다며, 동작이 느리다며, 식판을 깨끗하게 닦지 않았다며 박 의경을 포함한 후임들은 버스 안에서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나무로 된 상황판으로 얼굴과 머리, 가슴을 얻어맞았다.

부대 생활을 잘하지 못한다,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 뿐 아니라 ‘후임병 관리’라는 명목으로 소대 버스 안에서 얻어맞은 것으로 확인된 것만 전체 가혹행위 26건 중 14차례다.

박 의경은 2009년 5월 아산기동대 1중대에 배치되자마자 내무반 안에서 저녁 점호를 하며 번호를 늦게 외친다는 이유로 침상을 잡고 한쪽 발로 박 의경의 가슴을 7-8차례 걷어찼다.

다음날에는 교육 겸 신고식 연습차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로 정강이를 차는 등 30-40차례나 때렸다.

선임들은 공식적인 면회 외출을 나가는 박 의경에게 ‘우리는 훈련 하는데 너희는 면회 나가냐’며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을 때렸고 병원에 다녀와 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청소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리기도 했다.

박 의경은 이런 사실을 부대에 신고했지만 지휘관들은 가혹행위를 묵인하고 방조, 축소 처리한 것도 인정됐다.

박 의경은 중대에 배치받은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내무반이나 행정반 사무실, 소대버스 등에서 26차례에 걸쳐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같은 해 12월 혈액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6월 숨졌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이런 식의 가혹행위는) ‘군기 잡기’이기도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 강경 진압을 쉽게 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며 “선임에게 당한 화풀이를 시위대에 전가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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