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로 맘껏 솔직한 단 하루”

“동성애자로 맘껏 솔직한 단 하루”

입력 2012-06-04 00:00
수정 2012-06-0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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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배경헌기자 성적 소수자로 분장 퀴어퍼레이드 체험기

“1년에 딱 하루, 동성애자임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서 열린 제13회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배경헌(왼쪽) 기자가 메릴린 먼로 분장을 하고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라고 쓴 카드를 들고 걷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서 열린 제13회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배경헌(왼쪽) 기자가 메릴린 먼로 분장을 하고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라고 쓴 카드를 들고 걷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퀴어(Queer·성적 소수자)퍼레이드의 한 무리를 이끌던 장병권(36)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의 말에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원피스로 한껏 멋을 낸 게이부터 피켓을 든 레즈비언, 외국인, 구경삼아 낀 시민들까지 다양했다. 250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도 짧은 시간이나마 성적 소수자들의 삶을 경험해 보기 위해 메릴린 먼로로 분장해 참여했다.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3회째다.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가 참여, 이뤄지고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도심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다. 1년에 단 하루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꽃 단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참가자들은 40분간 청계천로 1.5㎞를 흥겹게 행진했다.

행렬은 보기에 따라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갖는 의미는 사뭇 남다르다. 몇 시간 동안 그들에겐 솔직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차별적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는 성적 소수자들은 세상을 향해 “혐오는 폭력이다.”, “혐오하지 말고 사랑하자.”라고 외쳤다. 참고 살아온 그들의 현실이다. 드람(20·가명)씨는 “부모님에게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말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여장 차림의 기자 역시 혐오스런 눈길을 받아야 했다. 한심한 듯 혀를 끌끌 차는 중년 남성도, 안타까운 듯 바라보는 어머니 또래의 여성도 있었다.

성적 소수자들에게 결혼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현행법도, 사회적 통념도 가로막고 있다. 퍼레이드에 앞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미국 대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성 결혼과 관련한 행사가 이어졌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마련한 ‘동성 커플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EJ(34·여·가명)씨는 “집에서 결혼하라고 할 때마다 독신주의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가상으로라도 결혼하고 싶어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봤다.”고 말했다.

구경하는 이들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보수성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작은 변화지만 동성애자들이 해마다 거리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교사인 미국인 보이스(25·여)는 “미국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 훨씬 배타적”이라고 지적했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한 참여자가 대뜸 “기자님은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못하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묻자 “부모님이랑 친구들한테 솔직히 다 얘기하고, 길에서 애인과 스킨십도 하고. 그냥… 그냥 남들 다 하는 거요.”라고 답했다. 생각보다 소박한 소망이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2012-06-0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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