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당산동 봉사왕’ 마지막까지 봉사하다…

81세 ‘당산동 봉사왕’ 마지막까지 봉사하다…

입력 2013-01-13 00:00
업데이트 2013-01-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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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실옹 청소 봉사하고 귀가하다 버스에 치여 숨져

“건강했던 양반이 갑자기 이렇게 돼서 실감이 안 나요. 그날 아침도 추우니까 그냥 집에서 쉬라고 말렸는데….”

7일 오전 8시15분께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김계순(75) 할머니의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화면엔 ‘남편’ 표시가 떴다. 남편이 집을 나선 지 1시간여 만이었다.

전화에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영등포경찰서 경찰관이라고 했다.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오늘 어떤 옷을 입고 나가셨나요?”

할머니가 “노란 조끼”라고 답하자 경찰은 “맞네요. 머리를 조금 다치셨으니 병원으로 와주세요”라고 했다.

남편 임득실(81) 할아버지는 이날 당산동 일대에서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고 귀가하는 길에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는 버스에 치였다.

’조금 다쳤다’는 얘기는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할아버지는 몇 시간 뒤 고인이 됐다.

할아버지가 당산동에서 쓰레기 줍기나 아이들 등굣길 건널목 안전도우미 등의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인이나 자식들에겐 설명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방구석에 ‘영등포구 노인봉사대’라 적힌 노란 조끼와 모자가 보이더니 아침마다 그것을 챙겨입고 나갔다.

둘째 아들 임대희(47)씨는 13일 “워낙 무뚝뚝하던 분이라 어떤 계기로 봉사를 시작하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었다”며 “젊은 시절 너무 고생하셔서 나이 들고 웬만큼 살 만해지니까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193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무작정 상경해 영등포에만 50년 넘게 살며 몇년 전까지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았다.

당산동 주민들은 묵묵히 쓰레기를 줍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이웃 신유리(38·여)씨는 “한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봉사왕’이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인사했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활짝 웃으셨다”며 “정 많던 할아버지인데 그렇게 돌아가셨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족은 장례를 치르고 할아버지를 화장해 납골당에 모셨다.

영등포경찰서는 사고를 낸 버스기사 이모(50)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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