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찾다 실패한 이야기, 논문 서너 편보다 낫지”

“자료 찾다 실패한 이야기, 논문 서너 편보다 낫지”

입력 2013-03-13 00:00
수정 2013-03-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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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길 한중연 원장

“논문작성에 필요한 자료 찾기에 실패한 이야기를 리포트로 받아서 1편의 논문으로 인정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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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길 한중연 원장
정정길 한중연 원장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은 12일 올해 중점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최근 10여 년 전부터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문을 쓸 때 어려운 분야는 피하고 쉬운 분야로만 몰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학계의 풍조를 비판한 뒤 이렇게 대안을 내놓았다.

정 원장은 “최근 대학에서 1년에 논문을 2편씩 쓰라고 강제하는 경우가 많은 탓인지, 국사를 비롯해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논문 쓰기 어려운 분야는 연구를 안 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례로 한중연의 ‘글로벌 시대 한국적 가치와 문명연구’ 프로젝트를 들었다. 한국인의 과학적 창의성을 역사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시대별 전공자를 찾았는데 근대(갑오개혁) 이전 과학사를 전공한 연구자가 거의 없어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정 원장은 “국사는 한문 공부를 안 해도 되는 해방 이후 현대사만 하려 하고, 국문학도 해방 이후 현대 문학만 하려 한다. 행정학도 마찬가지로, 모두 논문 쓰기 쉬운 분야로 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의 학자들은 10% 정도 인기 분야에 연구자가 몰리기도 하지만, 인기 여부에 상관없이 자기 분야 연구에 매진한다”고 비교했다. 그는 “자료 찾기에 실패한 과정을 밝히는 리포트가 쓸데없는 논문 서너 편보다 훨씬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한중연은 올해 한국인의 창의성과 공공성, 합리성과 역동성을 역사 속에서 밝혀내기 위해 ‘한국인의 가치와 공공의식’ ‘한국인의 과학적 합리와 문화역량’ 등 2개 영역에서 10개 연구과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중연은 또 근현대사 등에 집중된 한국학 연구의 편향성 극복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올해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한국학 연구정보 집대성을 위한 연구지형도 구축 사업’을 벌인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가 한때 자체 기술이 너무 미약해서 일본 제품을 흉내 내 제품을 만들어 수출했지만, 조선 세종 대까지만 해도 과학기술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앞서는 등 2000여년 역사를 비교하면 늘 한국이 앞섰다”면서 “한국인의 과학적 창의성을 시대별로 일본, 중국 등과 비교하고 민족적 자존심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2013-03-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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