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등본 떼서 신상 털려면 100만원만 줘”

“남의 등본 떼서 신상 털려면 100만원만 줘”

입력 2014-02-25 00:00
수정 2014-02-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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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센터에서도 줄줄 새는 개인정보… 뿌리 못 뽑나

올 초 카드 3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으로 개인 정보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심부름센터를 통해 개인 정보를 무더기로 수집, 유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을 비롯한 상당수 심부름센터에서는 건당 수십만~100만원 남짓을 받고 가족관계증명서 등 제3자의 개인 신상이 담긴 문서를 빼내는 영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4일 자동차면허증 등을 위조해 주민등록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86건의 개인 정보가 담긴 공문서를 불법 발급받아 팔아 온 심부름센터 업주 양모(50)씨와 정모(54)씨를 개인정보보호법 및 공·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양씨는 “특정인의 가족관계 등 인적 사항을 알아봐 달라”는 고객 요청을 받고 다른 심부름센터 업주인 정씨에게 재의뢰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서울 금천구 A주민센터에서 86건의 주민등록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불법 발급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양씨는 공문서를 발급받아 온 대가로 정씨에게 문서 1건당 약 20%의 수수료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 일당은 주민등록등본 등을 발급받을 때 위조된 운전면허증과 가짜 서명이 된 위임장 등을 이용했다. 현행법상 타인의 주민등록등본 등을 대신 발급받으려면 당사자 서명이 담긴 위임장과 신분증 사본 등이 필요하다. 양씨 등이 위조한 운전면허증에는 운전면허 번호 등이 허위로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A주민센터 공무원들은 양씨 일당에게 많은 양의 공문서를 떼 주면서도 위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등록증의 정보는 내부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쉽게 허위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상의 개인 정보는 주민센터에서 즉시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A주민센터와 금천구청을 압수수색해 정씨가 발급받은 공문서 300여건을 입수했으며 이 가운데 86건이 불법 발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양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른 브로커의 부탁을 받고 정씨에게 주민등록등본 등을 받아 달라고 의뢰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양씨 일당뿐 아니라 심부름센터 중 상당수는 개인 정보가 담긴 공문서를 불법으로 발급받고 있었다. 서울신문이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찾은 심부름센터에 “주민등록등본 등 공문서를 발급받아 줄 수 있느냐”고 의뢰했더니 업체 10곳 중 4곳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한 심부름센터 관계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사흘 안에 등본을 떼 줄 수 있다”면서 “가격은 100만~120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심부름센터 관계자는 “주민등록등본 정보는 100만원, 가족관계증명서 정보는 150만원 선에 알아볼 수 있다”면서 “서류를 떼면 기록에 남지만 열람만 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KB국민·롯데·농협 등 카드 3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22일부터 한달간 특별단속을 벌여 개인 정보 침해 사범 392명을 검거해 21명을 구속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4-02-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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