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반년이 돼가지만 제도에 허점이 많아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씨처럼 직장 괴롭힘 가해자가 사장이면 퇴사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2일 “가해자가 사용자나 사용자와 특수관계인이라면 피해자가 직접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도록 하고, 노동부가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괴롭힘 신고를 받는 사람을 ‘사용자’로 규정했다. 신고를 접수한 사용자는 이 법에 따라 지체 없이 조사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징계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내에서 자율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라는 게 법의 취지다. 문제는 사용자, 즉 사장이 괴롭힘 가해자인 경우다. 신고를 받는 사람도, 조치를 취해야 할 사람도 사용자이다보니 사용자가 가해자이면 현실적으로 신고도 해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현행법에는 가해자 제재 조항이 없어 회사 대표를 징계할 수도 없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최소한 가해자가 대표자인 경우에라도 처벌 조항을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성희롱 가해자이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을 근로자가 직접 고용부 장관이나 근로감독관에게 통보할 수 있도록 한 조항(104조)이 있으나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이 조항에 따라 근로자는 사업주의 괴롭힘을 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지만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에 근로자가 사업장의 법 위반 사실을 직접 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적시돼야만 노동부가 나서 조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사용자에 의한 직장 괴롭힘은 주로 영세 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나, 정작 이 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아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한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회사에서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았을 때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완장치도 필요하다. 직장갑질119가 접수한 사례를 보면 B씨는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으나 한달이 지나도록 조사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B씨는 “무엇인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신고했는데 조사위 연기와 감사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