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하차 알바비, 폐지 줍는 할아버지에 모두 드린 대학생

택배 상하차 알바비, 폐지 줍는 할아버지에 모두 드린 대학생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0-06-23 16:39
수정 2020-06-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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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직원 동문회, 김태양 군(가운데)에게 장학금 전달.  배재대학교 제공
배재직원 동문회, 김태양 군(가운데)에게 장학금 전달.
배재대학교 제공
한 대학생이 밤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하던 길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만나 알바비를 다 털어준 사연이 알려지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23일 배재대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 바이오의약학부 2학년 김태양(21)씨는 지난달 25일 대전 서구 도마동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가던 길에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힘겹게 가던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오르막길과 씨름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김태양씨는 할아버지를 도와 리어카를 할아버지 댁까지 끌어다 드렸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주들이 있어 분윳값이라도 벌려고 나왔는데 참 고맙다”고 인사하자 김태양씨는 차마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했다. 그는 수중에 있던 꼬깃꼬깃한 5만원 지폐 2장을 할아버지 손에 쥐어 드렸다. 그리고선 “이 돈으로 손주들에게 맛있는 간식 사 주세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 돈은 김태양씨가 밤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었다.

김태양씨의 선행은 할아버지의 가족이 배재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배재대 대신 전달해드립니다’에 ‘노란 머리 배재대 청년을 찾습니다’라고 문의를 하면서 알려졌다.

사연을 전한 할아버지의 가족은 “학생의 신분으로 힘들게 용돈 받아가며 지내고 있을 텐데 이렇게 도와주는 학생이 있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라며 “늙으신 아버지가 기억하시는 인상 착의는 노란머리라는 것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란머리 학생,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연락 줬으면 합니다”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결국 할아버지의 가족은 이 글을 통해 김태양씨를 찾아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태양씨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할아버지의 가족은 또 한번 글을 올려 두 사람이 만난 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학생이 저를 만난 자리에서 분유 세 통을 건넸다”면서 “분유 세 통이 보통 금액이 아니다. 우리 형편으로는 살 수 없는 분유를 주고 ‘좋은 거 먹이시라’고 했을 때 눈물이 나서 학생을 끌어안고 울어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김태양씨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불우한 형편에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사연 등 어린 시절 힘든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이후 헤어질 때 김태양씨가 택시비와 3만원까지 챙겨주며 “10만원에 더해서 아이들과 함께 근처 동물원에 다녀오세요.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맛있는 간식보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 오세요”라고 말해 또 울어버렸다고 전했다.

김태양씨는 “본인 몸도 성치 않으신데 어린 손주들 걱정하시는 게 안쓰러워 잠시 도와드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배재대 직원 동문회원이 이날 장학금 100만원을 김태양씨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다음은 해당 사연을 전한 할아버지의 가족이 쓴 글.감사합니다. 이 싸이트의 도움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찾아 감사인사를드렸습니다. 우연한 만남이였겠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챙겨주셨다고 생각하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학생이 말해줬읍니다. 10만원정도 되는 돈은 상하차 한번만 하면 되는 돈이라고. 편히 생각하시라고. 편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학생을 일터로 뛰쳐나가게 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제가 학생의 위치였다면 저희 아버지를 돕지 않았을 겁니다. 부끄럽습니다.

학생은 저를 만나 분유 세통을 주고 갔습니다. 분유 세통이라는게 금액이 보통 금액이 아닙니다. 고급분유들은 한통에 3만원정도 하는데, 도저히 저희로서는 살 수가 없는 분유를 주시고는 좋은거 먹이라고 하셨을 때 눈물이 나서 학생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도 중학교까지밖에 나오지 못한 저로서는 배재대학교라는 대학에 다니는 여러분을 볼때마다 항상 부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린 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맥주의 안주삼아 이야기를 하니, 택시비와 3만원을 챙겨주시며 말해주더군요. 10만원에 더해서 아이들과 함께 대전 근처에 있는 동물원에 다녀오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맛있는 간식보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고. 많은 추억이 없는 제게도 너무 가슴아픈 어린날들이 생각나는 말이어서 또 울어버렸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갓 스무살이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청년에게 안겨 울다니, 아직 저도 많이 어리다는걸 느꼈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계속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지은 죄가 많다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학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학생들 또한 좋은 사람일겁니다. 얼굴을 한번밖에 보지 못했고, 배운게 없어 한글을 깨우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저로서는 어려운 공부를 해내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학생이 원하는 멋진 모습이 무슨 모습인지 알고싶습니다. 돕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해 제가 학생에게 옷이라도 사주고 싶습니다. 내면은 학생이 무언가 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 이미 성숙해져가는 과정이라고 느꼈습니다. 학생은 이미 멋집니다.

글솜씨가 뛰어나지 않아 미안합니다 여러분. 배재대학교의 학생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착한 학생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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