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기장 훔쳐본 동료 원망하듯… 故최숙현 “제발 그만 일러”

[단독] 일기장 훔쳐본 동료 원망하듯… 故최숙현 “제발 그만 일러”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0-07-09 01:06
수정 2020-07-0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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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속 사생활 침해 정황

“왜 우리 방 들어와서 뒤져봐? 너무해”
“○○야 그만 일러바쳐, 숨 막혀” 기록
감독 “독방 쓰게 해줬다” 입장과 반대
폭행 부인했던 金 “때린 거 인정” 선회
감독·주장 폭행장면 목격 사실도 밝혀
“선배 잘못 들출 수 없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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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뉴스1
고(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뉴스1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 선수가 합숙 과정에서 사생활을 침해당한 흔적들이 그가 남긴 일기장 곳곳에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경주시청팀 김모 감독 측은 “막내인데도 독방을 쓰게 해 줬다”며 사생활을 충분히 보호해 줬다고 했지만 최 선수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8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일기장에는 누군가 자신의 방에 몰래 들어와 일기장을 훔쳐 본다고 느낀 최 선수가 일부러 보란듯 쓴 대목이 적지 않았다.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인 지난해 3월 25일 그는 “너무하네. 방도 뒤지고 왜 우리방 들어와서 뒤져봐? 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만해 제발”이라며 “그리고 왜 일러? ○○(선수 이름)야. 내가 몰래 밖을 본다고? 아냐. 밖에 보면 니가 있는 거야. 그만 일러바쳐. 숨막혀”라고 썼다.

앞서 같은 달 1일에는 “우리 운동 나간 사이 니가 내 일지 읽었다면 나 건들지 말아줘. 일년 쉬고 니가 생각한 것보다 더 성장했고 변했으니까 나도 당하고만 있지 않아”라고 썼다. 그해 2월 28일에도 “물 먹고 700g 쪘다고 욕 ○먹는 것도 지치고 내 일지 ○보면 솔직히 니가 인간은 아니지”라며 “방 ○뒤질 생각도 말고 니가 내 일지 보면 어쩔 건데 나한테 왜 이렇게 뒤에서 욕하냐고 ○○하게? 내 마음인데 니가 ○본 게 잘못이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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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가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 쓴 일기장. 최 선수는 “너무하네. 왜 우리 방 들어와서 뒤져 봐?”라고 쓰는 등 일기장 곳곳에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심경을 담았다.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고 최숙현 선수가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 쓴 일기장. 최 선수는 “너무하네. 왜 우리 방 들어와서 뒤져 봐?”라고 쓰는 등 일기장 곳곳에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심경을 담았다.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일기에는 경주시청팀 주장 장모 선수의 폭언 정황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 선수는 “대놓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 나 죄지은 게 뭔지 모르겠다”, “욕 좀 그만해 입 안 아프냐”라고도 썼다.

한편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 선수 폭행 의혹을 받는 경주시청 김모 선수는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 선수를 폭행한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4명 중 한 명이다. 그동안 의혹을 부인한 이유에 대해 김 선수는 “도저히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선배의 잘못을 들추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 선수들이 국회까지 가서 증언하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껴 용기를 냈다. 최숙현 선수에게 미안하다”면서 “앞으로 모든 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성실히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김 선수는 또 감독과 장 선수의 폭행 장면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 선수가 훈련장 등에서 최 선수를 폭행하는 것도 적어도 한 달에 3, 4번은 봤다”면서 “선후배 관계가 빡빡했고,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2020-07-0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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