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처음 내놓은 ‘민주화운동’ 판단 기준

사법부가 처음 내놓은 ‘민주화운동’ 판단 기준

입력 2013-06-26 00:00
업데이트 2013-06-26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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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골짜기도 깊어지는 법이고, 몰아치는 비바람과 흐르는 물의 방향·세기에 따라 골짜기 모습도 달라지는 법이다”

비교적 딱딱한 일반 판결문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 유려한 수사(修辭)는 ‘민주화운동’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풀이한 법원의 첫 판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서울고법 행정9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선고한 판결에서 민주화운동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키는 활동’의 의미를 언급하며 이같이 비유했다.

해당 사건은 1992년 노태우 정권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42)씨가 자신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달라며 관할 행정청을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은 시민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국민에 의해 국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 항거행위 자체의 동기나 목적만을 고려하지 말고, 당시 정부가 어떤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였으며 이에 대항하는 항거자의 행위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어떤 행위가 민주화운동인지 판단할 때는 ‘골짜기(항거행위)’뿐 아니라 ‘산과 비바람과 흐르는 물(정부의 통치 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런 기준을 임씨 사건에 그대로 대입했다. 임씨가 학생운동을 한 당시 정부의 통치행태를 언급한 것이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법 적용기간을 설명하면서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최초로 수립된 정부는 1992년까지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요구하는 각종 운동이나 시위를 진압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헌법규범과 헌법현실 사이의 괴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며 1964년 3월 이후 사건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민주화운동법은 따로 미래의 적용 기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 덕분에 임씨는 신청 13년 만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법원 관계자는 26일 “민주화운동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키는 활동’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민주화운동의 판단 기준을 세운 사실상 첫 판결”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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