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적 IMF, 한국에 유화제스처 왜

고압적 IMF, 한국에 유화제스처 왜

입력 2010-07-10 00:00
업데이트 2010-07-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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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장 붉은티셔츠 입고… 亞콘퍼런스 선제안도

#1997년 12월23일 대통령에 당선된 지 사흘 만에 김대중 당선자는 비밀리에 방한한 데이비드 립턴 미국 재무차관보를 만났다. 그는 실질적으로 IMF의 구제금융 협상을 지휘하던 터였다. 일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차관보에게 최종 면접을 본 격이다.

#2010년 7월6일 2주간 한국 정부와 연례협의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비르 랄 IMF 한국담당과장은 붉은악마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멋쩍게 웃었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선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격세지감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잔뜩 목에 힘을 줬던 IMF가 상냥해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IMF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기구인 만큼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이뿐이 아니다. 12~13일 대전에서 IMF와 재정부의 공동 주관으로 열리는 ‘아시아 콘퍼런스’ 역시 IMF가 먼저 정부에 제안했다. IMF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곳에서 대형 콘퍼런스를 여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탄자니아에서 아프리카 콘퍼런스를 연 적이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 IMF는 콘퍼런스에서 외환위기 당시 취했던 정책수단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IMF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경제권에 구애를 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우선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의 대가로 가혹한 처방을 내린 원죄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더하면서 한껏 치솟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적 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각국의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초긴축·고금리이라는 ‘도식적 처방’으로 ‘악명’을 떨쳤던 IMF가 달라지기 시작한 변곡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위기 직후 사전 경보를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위기 극복의 큰 그림은 주요 20개국(G20)의 공조로 이뤄졌다. IMF는 구경꾼에 머물렀다. 조건도 까다롭거니와 한 번 쓰면 문제아로 찍히는 ‘낙인효과’ 탓에 IMF의 돈을 빌려쓰려는 국가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손님이 끊긴 대부업자에게 위기는 당연했다. 재원부족에 시달리면서 대대적인 인력감축과 더불어 보유 중인 금을 매각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IMF의 행보는 역할재고론과 지배구조 개혁 논의가 맞물리면서 스스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같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0-07-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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