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현대중공업 정관변경 놓고 갈등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싼 범현대가 기업간 다툼이 또 다른 국면으로 재연될 조짐이다.2003년 KCC, 2006년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지분 7.75%를 가진 현대건설 인수로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마련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다시 ‘경영권 위협’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오는 25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정관 7조2항 ‘우선주식의 수와 내용’ 항목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천만주에서 8천만주로 늘리는 변경안을 상정할 방침이다.
그런데 현대상선 지분 23.8%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이 안건에 반대 의사를 전달했고, 현대그룹은 이에 “현대중공업그룹이 정관변경에 반대하는 것은 현대상선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확대하려는 것은 필요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우호지분을 늘리려는 목적을 가진 것인데, 현대중공업그룹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바로 경영권 욕심을 포기하지 않은 증거라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나 현대중공업과 범현대가는 이에 불참했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과 그 우호지분은 41.78%에서 42.25%로 높아졌다.
반대로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지분은 29.7%에서 27.78%로,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현대가 지분은 11.94%에서 10.95%로 각각 낮아졌다.
현대그룹은 “당시 현대중공업그룹과 범현대가가 유상증자에 불참해 더는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번 정관변경 반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공격했다.
현재로서 현대그룹 우호지분은 적대적 지분으로 간주되는 현대중공업그룹과 KCC지분보다 많고, 현대건설을 비롯한 범현대가 지분이 모두 적대지분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38.73%로 여전히 우호지분이 많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우호지분이 50%에 못미치는 만큼 향후 나머지 소액주주 지분 등이 몇%만 움직여도 언제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사운을 걸었던 것도 그룹 경영의 핵심인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건설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현대그룹은 전방위적으로 경영권 사수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됐다.
현대차그룹쪽에는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7.8%를 현대그룹에 넘겨야 한다고 요구하는 동시에 우호지분 확대를 통해 적대세력과의 경영권 분쟁이 재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중공업그룹이나 그밖의 적대세력에 매각하거나 현대중공업그룹과 연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현대차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하지 않고 보유만 하고 있더라도 적대적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고 해도 현대그룹이 “진정한 화해는 현대상선 지분을 넘기는 것”이라고 못박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 및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실제로 그룹의 사업간 시너지 효과나 현대그룹의 미래와 적통성 문제 등으로 인해 현대상선 경영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물론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는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25일 열리는 주총에서 정관변경안이 통과될 지 아직으로선 미지수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비롯한 범현대가가 현대중공업그룹 쪽에 손을 들어줄 경우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진다.
결국 현재로선 현대상선 경영권 다툼이 재연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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