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회계법인 100대 기업 감사인 100% 독식
대기업들이 특정 회계법인과 5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심지어 10년 넘게 특정 회계법인만 고집하는 대기업도 적지 않았다.
감사인과 피감사인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유착 관계가 형성돼 부실 감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1 회계연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44개 기업이 동일 회계법인과 5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화학, 신한금융지주, 삼성생명 등 11개 기업은 지난 2002 회계연도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회계법인을 교체하지 않았다.
KT&G는 지난 2003년 안건회계법인에서 삼정회계법인으로 감사인을 교체한 이후 9년간 계약을 유지했다.
SK텔레콤과 우리금융지주, 대한생명 등 3곳은 안진회계법인과 8년 동안 거래를 했다.
호남석유화학과 하나금융지주, 현대글로비스, KCC, 영풍 등 5개 기업은 7년간 동일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정했다.
기아차와 롯데쇼핑, 아모레퍼시픽, OCI 등 7개 기업은 6년 연속으로, 한국전력과 SK이노베이션, 외환은행 등 17개 기업은 5년 연속으로 특정 회계법인과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장기간 바뀌지 않으면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유착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채이배 연구원은 “상장사의 경우 감사인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한 회계법인이 특정 기업의 감사인을 장기간 맡으면 서로 유착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한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감사를 오래 하다 보면 기업 담당자와 친해진다. 그러다 보면 유리한 결과를 제시하는 사례가 있다. 중소형 회계법인이 중소기업을 감사하는 경우에 특히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회계당국은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 관계를 막고자 지난 2006년 장기감사인 교체 제도를 도입했다.
6년 이상 특정 회계법인과 장기 감사 계약을 맺으면 그다음 해에는 의무적으로 감사인을 변경하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이 제도는 2010년 폐지됐다가 최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도입 논의가 진행되자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 김지홍 교수는 “회계 서비스 품질 평가를 엄격히 해 부실한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감사인 교체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감사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감사인 교체 제도 도입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과 감사인의 유착 사례는 아주 미미하다. 이보다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분식이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아서 감사인을 자주 교체하는 것이 오히려 감사의 투명성을 낮춘다”고 주장했다.
감사인 교체 제도가 폐지된 이후 이른바 ‘빅4 회계법인’으로 분류되는 삼일과 삼정, 안진, 한영회계법인의 시장 잠식이 빨라지고 있다.
현재 100대 기업의 감사인은 모두 이들 빅4 회계법인이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일 회계법인이 36개 기업과 감사 계약을 맺어 가장 많았고 이어 안진(27개)과 삼정(26개), 한영(11개) 등 순이었다.
지난 2002 회계연도에는 빅4 회계법인의 비중이 81%였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국외 진출 사례가 많은 대기업들은 국외에서도 국내와 동일한 수준의 회계 서비스를 원한다. 빅4 회계법인 모두 국외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대기업들의 수요가 자연적으로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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