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로 포퓰리즘 법안 나올까 우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재계가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재벌개혁 공약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우려했던 야권의 일대 약진 앞에 재계가 사실상 무기력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더욱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모두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중소기업 이익공유제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재벌개혁에 큰 이견이 없다. 특히 총선 이후 12월 대선까지 선거 정국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계로서는 고난의 시절을 온 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번 총선 와중에 정치권은 앞 다퉈 재벌 개혁을 요구하는 여러 공약을 제시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부터 경제민주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질서 확립, 복지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한미 FTA 폐기 등등 사안마다 재계의 의견이 들어설 자리조차 없는 것들뿐이다.
때문에 그동안 재계가 각 당의 공약 중 예의주시해온 것 역시 재벌개혁 관련 내용들이었다. 여야 할 것 없이 대기업들이 누려온 혜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점을 우려한 경제계 역시 19대 총선 결과로 드러난 여소야대 정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쏟아냈다. 경제 성장의 지속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그동안 선거 과정에 언급된 포퓰리즘적(대중영합적) 공약들을 재검토 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1일 총선 관련 논평에서 “각 당은 이번 총선 결과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통해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우리 경제가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거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제기됐던 불합리한 공약들은 원점에서 재검토 하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기업이 투자활성화와 일자리창출, 미래성장동력산업의 육성에 진력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 감세,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국회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19대 국회는 우리나라에 유리한 통상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추가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발효를 통해 경제영토를 넓히는 데 적극 나설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출총제에 순환출자 제한, 대기업 규제 ‘첩첩산중’
경제단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난해 말부터 불어 닥친 재벌개혁 공약들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내내 재벌개혁을 주창했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원내 다수 의석을 확보해서 더더욱 그렇다.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오는 6월 19대 국회가 열리면 곧바로 재벌개혁 관련 공약을 토대로 한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들이 ▲출자총액제한제 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금산분리 강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강화 등 재계를 옥죄는 것들이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는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손봐 문어발식 확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들이다. 다만 30대그룹을 해체해 3000여개의 중견 전문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은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순환출자 금지의 경우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내용이다. 기존의 순환출자 구조를 용인해 줄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인데, 아직 구체적인 안을 접하지 못한 재계로서는 전전긍긍일 수밖에 없다. 현재는 민주통합당이 3년간 유예한 후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 공약이 법으로 정해질 경우 삼성이나 현대차, 현대중공업, 롯데, 한진그룹 등은 기업 지배구조를 손봐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총수들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지주회사 요건 강화도 기업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다. 민주통합당은 지주사의 부채 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고,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지분 보유한도 역시 상장기업은 20%에서 30%로, 비상장기업은 40%에서 50%로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지주사 전환을 하려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수 일가가 그룹을 지배할 지주사를 만들고 이 지주사가 각 계열사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수십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언급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당초 예상과 달리 파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 금액을 순자산의 30%를, 통합진보당은 25%를 제시한 상태다. 통합진보당의 25%를 적용해도 현대중공업과 한화그룹 등 두 곳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야당은 하도급법 내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를 선언했다.
이 제도는 대기업의 비도덕적·반사회적인 행위가 명백할 경우 중소기업의 피해액을 넘어서는 금액을 보상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납품단가 이상 확대가 확실시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제한 시간도 현재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에서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폐기도 기업들의 우려 대상이다. 야당이 이미 한미 FTA 발효 중단과 재협상을 촉구한 상황이고 연말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전면 폐기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한 것을 친노세력이 주축인 민주통합당이 폐기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었다.
이처럼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우려했던 재벌 관련 공약들이 대거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규제가 바뀌는 통에 기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4대그룹 관계자는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우선돼야 하는데, 정치권이 갈수록 기업들을 옥죄려 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결국 투자가 줄고 고용도 늘지 않게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심판(정부, 정치권)이 마음대로 기존 게임의 룰을 뒤집는 것은 선수(기업)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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