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중국 위상강화 반영…국제금융질서 지각변동 이어지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마침내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 개혁을 실천할 수 있게 됐다.미국 의회를 통과한 2016회계연도 예산안에 IMF 구조개혁을 승인하는 조항이 포함됐고, 이 예산안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제기되고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신흥국의 목소리가 실제로 IMF의 지배구조 변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구조개혁 이후에도 미국은 IMF의 최대 지분을 유지하게 되지만 IMF 개혁의 지연을 둘러싼 신흥국들의 불만이 ‘불완전 연소’된 상황이어서 앞으로 다양한 국제금융질서 변경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길게는 15년 이상 이어진 IMF 구조개혁 요구 = IMF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은 한국에서 ‘IMF 사태’로도 불리는 아시아 금융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IMF가 1990년대 말에 자금 지원을 받는 나라에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도록 요구했지만, 그 이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선진국 중심으로 운영되는 IMF의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IMF 지배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흥국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이나 외환보유액에 비해 일부 신흥국의 IMF 지분이 너무 작다는 지적은 점점 힘을 얻어 왔다.
IMF도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 2006년 상반기에 발표한 중기전략 보고서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시급한 과제의 하나로 지목했고, 이는 같은해 9월 한국 등 4개국의 IMF 출자할당액(쿼터) 증가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집행이사회 구성 방식이나 총재 선출, 쿼터 산출 공식 등을 모두 바꾸자는 ‘2단계 IMF 개혁과제’도 마련됐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 개혁과제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IMF 구조개혁 방안이 합의됐고, 그 이후 IMF 집행이사회도 이 개혁 방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IMF 최대 지분을 가진 미국 의회에서 이 개혁 방안에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면서 어렵사리 마련된 IMF 구조개혁 방안은 약 5년간 ‘낮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의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처리된 2016회계연도 예산안에는 ‘미국의 IMF 집행이사가 66-2호 결의안에 따른 IMF 이사회의 헌장 변경을 승인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66-2호 결의안’은 2010년 마련된 IMF의 구조개혁 방안을 의미한다.
구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미국 의회의 승인이 이뤄진 이상 남은 절차는 188개 회원국에 대한 통보와 출자금 수령, 그에 따른 실제 쿼터 조정이다.
IMF 집행이사회는 이르면 다음 달에 쿼터 변경 검토를 위한 일정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 신흥국 위상 반영…국제금융질서 지각변동으로 이어지나 = 이번 IMF 구조개혁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신흥국, 특히 중국의 입지 강화다.
출자금 확충이 끝나면 중국의 지분 순위는 현재 6위에서 3위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등 ‘BRIC’ 4개국의 IMF 지분 순위가 모두 10위권 안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국 역시 현재 1.41%에서 1.8%로 지분이 상승하게 된다. 국가별 순위로는 현재 18위에서 16위로 높아진다.
미국의 지분은 16.7%에서 16.5%로 소폭 감소하지만, 중요 안건에 대한 거부권은 현재대로 유지된다.
최광해 IMF 이사는 IMF 구조개혁이 눈앞으로 다가온데 대해 “IMF는 그동안 위기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를 위해 자금 여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고 그를 위한 구조개혁을 기다려 왔다”며 IMF 내부에서 미국 의회의 승인에 대해 “잘된 일”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도 과거에 IMF로부터 지원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는 기여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됐다”며 “국제사회에서 책임이나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중국 역시 환영 의사를 표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미국 의회의 승인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2010년 마련된 개혁안은 IMF에 대한 신뢰와 정당성, IMF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DC의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IMF 구조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점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졌던 부분이 있었다며, 미국 의회의 IMF 구조개혁 승인에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정책연구기관 애틀랜틱카운슬의 안드레아 몬타니노 연구원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IMF가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 같은 상황을 거치면서 “경쟁과 균형을 토대로 전인미답의 금융환경에 대응해 가는 존중받는 국제기관으로 변모했다”며 “이런 점이야말로 미국 의회의 승인이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평했다.
다른 정책연구기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에드윈 트루먼 연구원은 지난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적어도 2012년부터 국제사회가 미국의 IMF 개혁안 승인을 기다려 왔고, 승인 지연은 미국에 신뢰성과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며 “만약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번에도 개혁안 승인에 실패했다면 악영향은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IMF의 구조개혁 실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국제 금융질서의 지각 변동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 또한 여전하다.
그동안 IMF 구조개혁 지연에 대한 불만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브릭스개발은행의 설립이 이런 불만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IMF 내 지분이 늘어났지만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점은 스스로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양대 강국으로 여기는 중국이 AIIB같은 다른 국제기구를 통해 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근거 중 하나다.
브릭스개발은행이 현재 러시아와 브라질의 경기 둔화 때문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IMF 구조개혁이 브릭스개발은행 설립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미국 의회의 IMF 구조개혁 승인에 대해 환영 입장을 보였지만, 이번 구조개혁에 따라 가장 가시적인 지분 감소가 나타날 유럽 국가들이 불만을 가질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PIIE의 트루먼 연구원은 구조개혁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IMF에서 더 이상 신뢰할 만한 대화 상대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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