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한항공·한진칼 경영참여 검토…“2월초 결정”

국민연금, 대한항공·한진칼 경영참여 검토…“2월초 결정”

김태이 기자
입력 2019-01-16 17:20
수정 2019-01-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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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투명·공정하게 주주권행사”…수탁자책임위서 행사 여부·범위 검토

조양호 회장 일가의 일탈행위로 논란이 됐던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여부가 2월 초에 결정된다.

국민연금은 ‘경영참여’에 나서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는 만큼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전문위원회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검증한 뒤 조 회장의 이사 연임 반대 등 주주권행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주총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 이후 개별 상장사에 대한 주주권행사 논의를 본격화함에 따라, 국민연금의 경영참여에 대한 찬반 논의가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 수탁자책임위서 검토 후 결정…기금위원 일부 “주주권행사 찬성”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16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여부 및 행사 범위를 검토하도록 결정했다.

수탁자책임위는 기존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자문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조직으로, 횡령·배임 등 대주주 일가와 경영진의 사익 편취 행위, 저배당,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주주가치 훼손 행위에 대한 주주권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권 행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주주가치 훼손의 정의, 주주가치의 상승·하락의 측정 방법, 주주가치의 시기적 변동 가능성 등을 심도있게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주주권을 발동하면 첫 사례가 되기 때문에 풍부한 자료 위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 13명이 참석했으며, 정부측 위원인 박 장관과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제외한 11명 가운데 8명은 수탁자책임위에 적극적 주주권행사 행사 여부·범위 검토를 맡기는 안건에 찬성했다. 나머지 3명은 ‘적극적인 주주권은 필요 없다’는 취지에서 안건에 반대했다.

‘수탁자책임위 검토’ 안건에 찬성한 기금위원이 많은데다 그 중 일부는 회의 석상에서 주주권행사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해 오는 3월 대한항공·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주주권행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금위는 수탁자책임위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주주권행사 이행 여부와 방식을 2월 초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이는 3월로 예정된 대한항공·한진칼의 주주총회 일정을 감안한 것으로, 국민연금이 임원의 선임·해임 등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제안을 하려면 그 내용을 주총일 6주까지 공식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2.45%를 가진 2대 주주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 지분은 7.34%를 보유해 조 회장 일가(28.93%),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국내 사모펀드(PEF)인 KCGI(10.71%)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주식을 갖고 있다.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조양호 이사와 한명의 사외이사 임기 만료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수탁자책임위에서는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들과 총수 일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사들에 대한 재선임 반대 등의 주주권행사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 배임·횡령·사기로 기소…“땅콩회항·물컵갑질도 오너 리스크 높여”

국민연금이 대한항공·한진칼을 겨냥한 이유는 조양호 회장이 각종 사익 편취,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이사인 조 회장은 기내면세품 등을 구입할 때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96억원 상당의 통행료를 받아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또 ‘사무장 약국’을 운영해 1천억원대의 부당이득금을 챙긴 혐의로도 기소됐으며, 회사 조직을 이용해 가구, 욕조 등을 밀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인과 세 남매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부정대학편입’, ‘공사현장 업무방해’ 등의 사건으로 회사 이미지와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에 국민연금은 오너 리스크와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해왔다.

대한항공 주가가 하락하던 지난해 6월 5일 공개서한을 발송해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와 해결방안을 묻고, 대한항공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공개서한 발송이라는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례적 답변만 내놓으면서 대주주인 국민연금에 입장을 소상히 설명한 적이 없다.

◇ “총수 일가 견제해야” vs “경영활동 위축”…박 장관 “사회적 고려사항 검토해 결론”

국민연금은 지난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등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원칙적으로는 이런 경영참여를 배제하지만, 중대한 사안이 생겨 기금위가 의결한 경우에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주주권 논의가 시작되자,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를 두고 논란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기금위 회의장 밖에서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등 노동·사회단체들은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회에서도 윤소하(정의당)·이학영(더불어민주당)·채이배(바른미래당) 의원과 진보성향의 시민단체가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사회가 총수 일가의 배임 행위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는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배임 행위와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성향단체도 여의도에서 맞불 토론회를 열어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스튜어드십코드가 정치권에 이용될 수 있고,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게 된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기금위에서도 일부 위원은 “책임있는 경영진과 대화를 더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올해 주총에서의 실력 행사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의 측면에서 단순투자가 아니라 경영참여를 할 때 자본시장법상 10%룰(단기 매매차익 반환)의 적용을 받아 운용상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박 장관은 “수탁자책임위가 단일안 또는 복수안을 낼 수 있고, 전문가 의견이 갈리면 결론을 못 낼 수도 있다”며 “기금위는 수탁자책임위 의견을 존중하되 사회적인 고려사항을 검토해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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