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냉장고 디자이너, 그게 비스포크

소비자가 냉장고 디자이너, 그게 비스포크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19-06-30 23:28
수정 2019-07-0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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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 총괄 부민혁 삼성전자 디자인팀 상무

취향대로 색·디자인 2만여개 조합 가능
지금까진 소비자가 냉장고에 맞췄지만
생활 패턴 맞게 방·거실에도 둘 수 있어
소비자 맞춤 디자인 위해 삼성 로고도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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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최근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를 선보였다. 총 8개 타입 모델과 3가지 소재, 9가지 색상을 소비자가 가족 수와 식습관, 주방 형태 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제품으로 조합 가능한 수가 2만 2000여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최근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를 선보였다. 총 8개 타입 모델과 3가지 소재, 9가지 색상을 소비자가 가족 수와 식습관, 주방 형태 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제품으로 조합 가능한 수가 2만 2000여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제공
‘비스포크’는 원래 맞춤 정장을 뜻했는데, 지금은 소비자 요구에 맞춤으로 생산하는 일을 통칭하는 단어가 됐다. 삼성전자는 소비자가 색상, 재질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신제품 냉장고에 ‘비스포크’란 이름을 붙였다. ‘냉장고’와 ‘맞춤’이란 조합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비스포크는 출시와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화제에 오르더니, 가구·도서 박람회 등 부엌과 큰 관련 없는 다양한 공간에 어우러지고 있다. 디자인을 총괄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팀 부민혁 상무에게 비스포크 이야기를 들었다.

-비스포크 냉장고의 여러 조합 중 어떤 디자인은 냉장고라기보다 옷장 같아 보인다.

“다른 주방가구보다 도드라지게 툭 튀어나오지 않은 디자인, 어느 공간에서도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에 대한 욕구는 계속 있었다. 예컨대 요즘 거실 쪽을 바라보는 아일랜드 식탁이 유행이다. 주방이 등 돌려서 어떤 작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거실 쪽을 바라보고 소통을 시도하는 ‘사회적(소셜) 공간’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부엌가구 공사를 하거나 빌트인 가구를 들이면 되쟎아’라고 말하는 것은 냉장고 제조사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 것 같았다. 전월세가 많은 우리 주거 현실에서 집을 빌려 쓰는 상황, 그래서 공사를 함부로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집안 환경에 섞이고(블렌딩·blending), 서서히 녹아들게 하는(머징·merging) 디자인을 구상했다.”

-‘취존’(취향존중) 디자인으로 SNS 화제다. 한편으로 이제 냉장고 취향도 고민해야 하는지, 너무 선택지가 많아 혼란스러운 ‘선택의 역설’ 딜레마를 부르는 것 아닌지.

“밀레니얼들은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취향을 모를 수 있다. 이럴 때 비스포크 사이트에서는 자신의 취향대로 따라갈 수 있다. 주방 스타일 예시를 보며 매칭을 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취향은 직관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고를 때 ‘객관식’이 꼭 ‘주관식’보다 선택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미 제조사가 디자인과 용량 등을 다양하게 조합해 매장에 전시한 7~8개의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는 기존의 가전 제조 방식이 고객에게 선택의 부담을 덜어 주는 일 같지만, 이는 결국 고객에게 선택한 제품의 아쉬운 점까지 받아들이라는 방식이다. 2만 2000개 조합이 가능한 비스포크를 선택하는 일은 고객에게 주관식 문제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광택이 있는 게 좋은지, 원색과 파스텔색 중 어떤 게 좋은지 스스로의 취향에게 물어본 뒤 취향대로 구현된 제품을 고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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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의 디자인을 총괄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팀 부민혁 상무가 비스포크 쇼룸이 있는 디지털프라자 강남 본점에서 비스포크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의 디자인을 총괄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팀 부민혁 상무가 비스포크 쇼룸이 있는 디지털프라자 강남 본점에서 비스포크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에 대한 욕구들이 있었다. 비스포크는 왜 지금 나왔는가.

“사실 비스포크 디자인 원안 제안은 이미 5년 전에 있었다. 제안 이후 지속적으로 제안을 했다. 그것이 지금 구현된 것은 삼성전자의 생산 혁신이 동반된 덕분이다. 우리는 전 세계 어디에나 공장을 갖고 있고, 유통 채널과 사후 서비스 채널을 보유했다. 고객이 2만 2000개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해 주문하면 그에 맞춰 생산해 며칠 만에 배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냉장고 겉 패널을 바꿔 끼우는 방식을 채택해 생산라인에서 다양한 디자인을 쉽게 제어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디자인은 소비자 후생을 높이기도 했다. 이사를 가거나,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그냥 싫증이 났을 때 패널 교체를 통해 냉장고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

-패널 인테리어가 무엇인지 더 설명해 달라.

“다양한 사례가 있겠다. 신혼이라면 본인의 결혼사진을 비스포크 냉장고에 끼워 둘 수 있겠다. 냉장고를 교체하거나 디자인을 바꿀 때 사진을 버리는 게 탐탁치 않다면, 이 결혼사진 패널을 떼어내 별도 액자처럼 쓸 수 있다. 비스포크는 평면적인 플랫 디자인을 채택했다. 디자인할 때 비스포크 냉장고가 하나의 캔버스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널 색을 선택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고무자석이나 포스터를 냉장고에 붙이는 방식으로 소비자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는 상상을 했다.”

-1인 가구 증가 등이 비스포크를 탄생시킨 동력이 됐다. 역으로 비스포크가 바꿀 삶의 모습은.

“기존의 큰 냉장고는 이른바 ‘사 주는 가전’일 때가 많았다. 결혼할 때나 분가할 때 사 주는 가전, 또는 이사하거나 살림을 바꿀 때 용량을 늘려 스스로에게 상처럼 사 주는 가전이었다. 일단 사 주면 소비자가 냉장고에 맞춰야 했다. 비스포크 디자인은 사용하는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다. 혼자 살 때 냉장고만 두고 쓰다가 식재료가 많아지는 가족 구성이 되면 하나를 더 사서 옆에 세우는 식이다. 꼭 주방이 아니라 거실에 냉장고를 두거나 필요하면 방에 두는 등 소비자 생활 패턴에 맞춰 냉장고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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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최근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를 선보였다. 총 8개 타입 모델과 3가지 소재, 9가지 색상을 소비자가 가족 수와 식습관, 주방 형태 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제품으로 조합 가능한 수가 2만 2000여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최근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를 선보였다. 총 8개 타입 모델과 3가지 소재, 9가지 색상을 소비자가 가족 수와 식습관, 주방 형태 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제품으로 조합 가능한 수가 2만 2000여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제공
-제품에서 삼성전자 로고가 안 보인다.

“삼성 로고는 안쪽으로 빠졌다. 여러 모듈을 붙였을 때 여러 곳에 붙은 로고가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스포크는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지만, 실제 시장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튀는 색깔에 부담을 느끼긴 한다. 10년 동안 원색 냉장고를 쓰는 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사용하는 도중에도 패널을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담이 덜해지면 새로운 트렌드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비스포크 다음 냉장고 디자인 트렌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집, 가구, 가전 인테리어는 세대, 주거환경, 유행 컬러뿐 아니라 사회현상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유럽에서 테러가 많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집 안으로 많은 사회적 활동을 끌고 들어오고, 집을 좀더 안전한 곳으로 꾸미려 했다. 인테리어 전망은 쉽지 않다. 그래서 비스포크를 통해서 제조사의 자세가 달라졌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소비자 취향을 선제적으로 알아내 그것을 저격할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 대신 소비자와 취향에 대해 대화를 이어 가는 방식을 시도한 가전이 비스포크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9-07-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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