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보안망 협력업체 영업전략에 ‘뻥’

삼성전자 보안망 협력업체 영업전략에 ‘뻥’

입력 2010-02-03 00:00
수정 2010-02-0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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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세계시장 점유 1위 업체가 장비업체에 당해

검찰이 파헤친 삼성 반도체 기술유출 사건은 장비 납품 등으로 ‘협력 관계’를 맺은 업체도 순식간에 산업 스파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더 많은 보수를 준다는 경쟁사로 기술을 들고 옮겨가거나 M&A(인수합병)를 통해 인수기업의 기술을 고스란히 넘겨받는 기존의 기술유출 사례와 성격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반도체 업계에서 별다른 대가 없이 핵심기술 수십 건이 빠져나간 것은 제조업체와 장비업체 직원들이 수년간 교류하며 쌓인 친분 때문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업체인 A사는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와 모두 납품 계약을 맺고 장비의 설치·관리를 위해 두 업체를 자유롭게 오갔다.

 구속된 부사장 곽모씨를 비롯한 A사 한국법인 직원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제조와 관련된 비밀이 적힌 문서를 몰래 빼내거나 PC에 접근해 비밀을 옮겨적는가 하면 직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구두로 정보를 캔 뒤 상부에 보고했다.

 한 직원은 삼성전자 과장의 미국 출장에 동행해 숙소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개발 계획이 담긴 파일을 USB 메모리를 통해 통째로 넘겨받기도 했다.

 A사는 반도체 장비 시장의 입지와 후발주자인 하이닉스의 경쟁 심리를 십분 활용했다.

 삼성전자는 수년 전부터 A사가 반도체 기술을 빼가는 눈치를 채고 해당 직원들을 해임하라고 요구했지만,기술유출을 주도하는 등 ‘공로를 쌓은’ 곽씨는 지난해 초 한국법인 대표이사에서 본사 부사장으로 오히려 ‘영전’했다.

 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삼성전자도 장비 시장을 석권하는 A사의 ‘영업전략’에 꼼짝없이 당한 셈이다.

 하이닉스 직원들은 “어려우니 좀 도와달라”거나 “업데이트 좀 부탁한다”라며 삼성전자의 기술을 빼내달라고 암묵적으로 요청했고 관련 기술에 필요한 장비를 팔아야 하는 A사로서는 매출을 올릴 호기였던 것이다.

 검찰은 이처럼 납품업체를 통한 경쟁사의 핵심기술 취득이 업계에 관행처럼 퍼져 있다고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 가운데 일부를 A사도 가지고 있었고 기술유출을 주도한 곽씨가 미국 본사로 옮긴 만큼 삼성전자의 핵심기술이 이 업체가 거래하는 다른 외국의 경쟁업체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A사 등 하이닉스에 제조장비를 납품하는 업체들은 작년 3월부터 7월까지 업무 협조 차원에서 회의체를 꾸려 정기적으로 만났고,이곳을 통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이 공공연하게 유통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극비로 분류된 영업기밀을 대가도 없이 친분 관계에 따라 넘겨준 것은 보안의식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뜻이다.기술이 생명인 다른 업계에도 직원 보안교육을 강화하고 핵심기술을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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