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블로그] 車 옆에는 꼭 여성 모델이 있어야 하나

[현장 블로그] 車 옆에는 꼭 여성 모델이 있어야 하나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9-04-01 22:26
업데이트 2019-04-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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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모터쇼 여전히 노골적 의상

미투운동 계기 性감수성 제고와 배치
F1, 그리드걸 폐지 性상품화 고리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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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카와 모델
콘셉트 카와 모델 28일 오전 고양 킨텍스 제2전시관에서 열린 ‘2019 서울모터쇼’ 프레스 데이 행사에서 모델이 콘셉트 카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3.28 연합뉴스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어? 웃어 봐. 웃어야 예뻐….”

어디선가 듣기 거북한 발언이 귓전을 때렸다. 지난달 28일 ‘2019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 행사가 진행된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다. 카메라를 든 한 남성은 단체 포토세션이 끝났는데도 여성 모델을 세워 놓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자동차를 찍는 게 아니라 여성 모델을 찍고 있었다. 모델은 불쾌감을 잔뜩 머금은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에선 이런 얘기도 들려왔다. “○○○차 모델이 예쁘대. 거기로 가자.”

모터쇼에서 새로 선보이는 자동차의 외관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 보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자동차 옆에 늘 모델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보 직원에게 “차만 찍고 싶은데 차 옆에 꼭 모델이 있어야 하나요”라고 묻자 “모델이 있어야 차가 더 돋보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동차가 있는 곳엔 언제나 여성 모델이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열린 레이싱·모터쇼 행사에서 여성 모델이 대거 등장한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 경주의 스폰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도우미 성격의 레이싱 모델을 투입한 것이다. 일종의 ‘섹슈얼 마케팅’이다. 국내에는 국제 공인 자동차 경주가 처음 열린 1995년부터 여성 모델이 등장했다. 이들은 각종 경주나 모터쇼 행사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나타나면서 자동차와 함께 주요한 구경거리가 됐다. 모델을 보러 모터쇼에 간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자동차 업계에는 모델들에게 점잖은 의상을 입히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출 수위는 다시 높아졌다. 이번 서울모터쇼에 참가한 일부 자동차 업체의 모델들도 여전히 노골적인 의상을 입고 홍보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한 자동차 업체의 부스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 모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남성이 즐비했다.

행사의 ‘흥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성 모델을 섭외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미투운동’을 계기로 성 감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쩍 높아진 상황에서 모터쇼 여성 모델을 상대로 버젓이 이뤄지는 성희롱은 원천 차단하는 것이 옳다.

세계 최대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1(F1)은 지난해 그리드걸(레이싱걸) 제도를 폐지하면서 수십년간 지속돼 온 성 상품화 논란에서 벗어났다. 자동차가 남성의 전유물인 시대도 이미 지났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앞으로 열리는 모터쇼에서는 자동차와 여성 모델 간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길 바란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2019-04-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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