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베스트셀러 만들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베스트셀러 만들기/이순녀 논설위원

입력 2010-03-11 00:00
수정 201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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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80년간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앨리스 페인 해케트에 따르면 뉴욕의 어느 책 판매인이 집으로 가는 길에 가판대 상인에게 가장 잘 팔리는 책, 즉 베스트셀러가 뭐냐고 물은 이후 보편적인 명칭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최초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1895년 창간된 문학잡지 ‘북맨’에 실렸다. 대도시 16개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6권을 뽑아 매달 ‘6권의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국내에선 1950년대 중반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7만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회자됐지만 공식적인 베스트셀러 집계는 교보문고가 문을 연 1980년대 이후부터다.

베스트셀러의 영예가 온전히 작품의 힘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웬만한 독자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마케팅이란 ‘마법의 손’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흙 속에 묻힌 진주일 뿐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이 책이라고 해서 비껴갈 리 없다. 독일 학자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1984년 출간한 책에서 베스트셀러를 “체계적인 판촉활동으로 ‘만들어진’ 성공적인 책”으로 규정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출판 마케팅은 진주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한 줄로 잘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일에 비견할 수 있다.

문제는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대한 과도한 열망이 정당한 마케팅의 선을 넘어 비정상적인 수법에 빠져들 때 생긴다. 책 사재기, 배보다 배꼽이 큰 경품과 이벤트 등이 대표적이다. 출판사와 서점 간의 검은 거래 의혹도 거론된다. 외국도 예외가 아니다. 몇년 전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신간 서적을 매대의 좋은 자리에 진열하기 위해 출판사가 서점에 거액을 지불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그제 출판사 4곳을 사재기 혐의로 당국에 신고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동일한 주소로 주문하고, 1만 2000원짜리 책을 사면 2만원을 돌려주는 수법으로 온라인 판매량을 늘려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했다고 한다. 광고보다 비용은 덜 들면서 효과는 더 크기 때문에 상당수 출판사들이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고정관념화하고 있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이며, 아편과 같은 것”이라는 파울슈티히의 경고가 새삼스럽다.

창작의 세계를 다루는 전문가답게 좀 더 창조적인 마케팅에 대한 출판인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2010-03-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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