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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후보 단일화/육철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후보 단일화/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0-06-01 00:00
업데이트 2010-06-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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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세력에게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회한으로 남아 있다. 김영삼(YS)-김대중(DJ)의 후보 단일화 실패는 양김(兩金)의 쓰라린 대선 패배와 함께 이후의 정치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해 6월 항쟁과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확정되자 YS와 DJ의 위세는 대단했다. 집권 민정당은 의기소침했고 국가 정보기관조차 여·야에 양다리를 걸쳤다. 9월 초 YS는 야권후보 단일화 운을 떼며 미국에서 갓 돌아온 DJ를 몰아쳤다. 하지만 DJ는 직선제만 실시되면 백의종군하겠다던 말을 뒤집고 ‘4자 필승론’을 내세워 독자 출마를 강행했다. 4자 필승론이란 ‘DJ·YS·노태우·김종필(JP)이 맞붙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DJ 진영의 믿음이었다. 선거 결과는 양김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노태우 후보의 어부지리였다.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는 이 부문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노 후보는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국민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잠재웠다. 대이변이었다. 그러나 그해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번번이 죽을 쑤는 바람에 대선 두어달 전 그의 지지율은 15%도 안 됐다. 반면 축구협회장을 맡았던 정 후보는 월드컵 4강 바람을 타고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는 ‘국민통합21’이란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나섰다. 이회창(한나라당)-정몽준-노무현 간 3파전에서 노 후보는 정 후보에 근소한 차로 뒤지는 3위였다. 노 후보는 일대 결단을 내렸다. 사후(死後) 대필 회고록 ‘운명이다’를 보면 그의 판단은 이랬다. ‘이대로 가면 당선 확률 0%, 정 후보와 맞붙어 단일후보가 될 확률은 50%, 단일후보가 되면 대통령 확률은 거의 100%’ 노 후보는 단일화에 나서 승자가 됐다. 대선 전날 밤 정 후보가 권력배분 문제로 단일화 파기를 선언했지만 대세에 지장은 없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심상정(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유시민(국민참여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명분은 야권 단일화란다. 김진표(민주당) 후보와 단일화에 이미 성공한 유 후보로선 힘이 불끈 솟는 일일 게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의 단일화 과정을 빼닮았다. 유 후보가 심 후보의 지지율(여론조사 3~8%)을 그대로 흡수해 김문수(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12%포인트)를 뛰어넘을지 관심거리다. 유 후보는 ‘지지율 단순합산+α’를 욕심낼 법하다. 그러나 정치는 명분싸움이다. 산수(算數)처럼 정답이 똑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게 항상 문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0-06-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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