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입력 2010-08-16 00:00
수정 2010-08-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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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 간 극심한 더위가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경작지와 마을이 잿더미가 되고 있기도 하다.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가 얼마나 견고하지 못한지, 한순간에 어떤 심각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이번 여름의 무더위로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불행은 오래전의 사건, 즉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이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와 희생은 지구상에 발생했던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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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어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65년이 되는 날이었다. 9월2일에는 전 세계가 6년간 지속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했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맞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대일전쟁은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대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대일전쟁은 소련군이 참전하기 몇 년 전에 미국이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주로 공중과 해상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의 육상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당시 중국 북동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대일전쟁에 참전한 소련은 바로 이 관동군을 격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1945년 8월9일 소련군은 국경을 넘어 관동군의 한반도 퇴로를 차단했고, 관동군은 몇 주 만에 궤멸됐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은 4700명이 전사했는데, 그중 1963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당시 모스크바의 조치 덕분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한반도의 인프라와 산업시설도 보존될 수 있었다. 소련 정부는 주로 한반도 북부를 지원했으며, 그 결과로 한반도 북부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건설됐다. 당시 모스크바의 정책은 주로 대외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해방에서 소련의 역할에 관한 기억은 소련군의 묘지와 기념비가 남아 있는 북한에서 주로 유지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계사의 흐름은 한민족의 운명에 커다란 시련을 안겨 주었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양분됐고, 서로 다른 정치체계를 추구하는 두 개의 국가가 형성됐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한국전쟁과 냉전은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을 분단시켰고, 한국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역사학자들이 당시의 사건들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새로운 의견과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이 항상 객관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완전한 정치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전쟁에서 공정한 측면을 찾는다는 시도는 대부분 저급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어 TV를 통해서만 전쟁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고를 교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그 어떤 전쟁도 본질적으로 침략행위이므로, 거기에서 미덕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침략자에 맞서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동의 적이 어떤 슬픔과 고통을 초래했고, 많은 사람의 운명을 망쳐 놓았는지에 대해서보다는 그 적에 맞서 싸웠던 여러 국가들 간의 우호와 협력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발생했던 비극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청년들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들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들을 항상 환영하는 입장이다. 미래세대 교육에서 자국의 역사를 알도록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지난 세월의 사건들에 관한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역사 스스로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상기시키려 할 것이고, 산불의 연기와 같은 위협적인 그늘이 드리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연합국의 공동노력의 결과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혈전을 벌였던 한국 독립투사들의 공도 있었다.
2010-08-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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