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범재 뽑는 특채제도 되지 않기를/임승빈 명지대 행정학 교수

[기고] 범재 뽑는 특채제도 되지 않기를/임승빈 명지대 행정학 교수

입력 2010-10-30 00:00
업데이트 2010-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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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을 본 고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뒷말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통한 인재의 공정한 선발은 사회발전의 단계라고까지 여겨졌으며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기준으로까지 언급되었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변화무쌍한 대내외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현실을 보면 시험제도를 통한 인재 충원에만 의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과학기술 분야, 외교통상 분야 등의 기술 변화와 외국 사정의 변화가 매우 심해 몇 년 전 혹은 몇십 년 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직 공무원들만으로는 적절히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선진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력직에 해당하는 일반직 공무원과 비경력직에 해당하는 특별채용 형식으로 공무원을 선발해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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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빈 한국정책과학학회장·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임승빈 한국정책과학학회장·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이러한 관점에서 외교통상부의 특채 문제는 특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채 문제의 진원지였던 외교통상부가 특채제도를 행정안전부로 이관하겠다는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신규 채용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6, 7급 직원 충원 역시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공채 위주로 선발하기로 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공채로 선발하기 어려운 특수 외국어나 전문분야 직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특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외교부는 특채 시 외교관, 고위직 자녀에 대해서는 특별관리 시스템을 적용, 더 강하게 사전검증을 하겠다고 했다. 과거 외무부 시절부터 완강하게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성을 주장했던 당사자가 특채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시험관리 자체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은 여론에 밀린 형태지만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본부 고위직을 민간 등에 확대 개방하고 타 부처와의 인사교류도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방안, 재외공관 경제공사 개방, 직무평가를 통한 재외공관 대사 능력 중시, 직원 ‘지명선택제’ 도입, 선호·비선호 부서 간의 순환근무를 추진하겠다는 방안 등은 일단은 지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보여 긍정적이다.

그러나 외통부의 특채 문제는 채용과정에서 고위직의 비리와 채용 이후의 관리 문제가 심각했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채란 전문성 및 특수성, 업무의 비영속성 등의 이유로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을 채용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해당 업무가 사라지면 자리도 사라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상당한 기간 지속한다고 가정한다면 일반직 채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채로 들어온 사람들을 일반직 업무에 배속시킨다든지 심지어 국외 연수를 보내 특채의 본질적 취지를 훼손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사회과학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제도는 위대한 지적 설계자(조물주)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선택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제도가 과거보다 현재의 것이 낫다고 볼 수 없다. 특채제도를 행정안전부로 이관하면 선발 기준이 표준화되면서 특채의 취지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특채는 평범한 인재를 뽑으려고 도입한 제도가 아니다. 외교통상부가 택하고자 하는 제도 개선 방안들이 전략적 선택인지, 그렇지 않으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인사정책의 근간을 바꾸고자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해야 한다. 지금은 스펙의 시대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들 한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제빵왕’의 김탁구는 학력 미달로 특채에 지원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누구든지 인정하는 범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앞날을 이끌기 위해 슈퍼스타 K2에서 우승한 허각씨처럼 학벌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 인재도 필요하다. 인재는 널리 깊게 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외통부의 조치로 인해 행정안전부가 일괄적으로 관할하게 되면 범재만을 채용할 것 같다는 것이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2010-10-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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