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롤모델의 빛과 그늘/진경호 논설위원

[씨줄날줄] 롤모델의 빛과 그늘/진경호 논설위원

입력 2012-08-17 00:00
업데이트 201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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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영국 여왕과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의 대결…. 유력 대선주자들의 롤모델을 보면 12월 대선은 마치 이들 두 위대한 지도자의 대리전이 될 모양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가 자신의 롤모델로 엘리자베스 1세를 꼽았다. 지난 2000년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과거 1000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았던 인물이다. 어느 한 나라, 한 시대도 아니고 무려 1000년에 걸쳐 등장한 리더와 영웅들 가운데서도 으뜸이라니 가히 롤모델로서는 그 이상이 없을 듯도 하다. 박 후보는 “파산 직전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고, 자기가 불행을 겪었던 만큼 늘 관용의 정신을 갖고 국정을 이끌었다.”고 엘리자베스 1세를 평했다.

‘나는 잉글랜드와 결혼했다.’고 말하며 평생 독신을 고수했던 그는 어머니의 참수와 왕위 계승권 박탈, 반란 혐의에 따른 유폐 등 어린 시절의 불행을 딛고 25세의 나이에 여왕에 올라 서거하기까지 45년간 통치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뒤처진 혼돈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도약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이후 18년간 은둔의 시간을 보낸 박 후보로서는 삶의 역경이 오버랩되고, 국가 발전을 향한 신념에 있어서 좇을 만한 인물로 평가하는 듯하다.

미 대통령 중 재임 기간(1933~1945년)이 가장 길었던 루스벨트는 공교롭게도 야권의 대선후보 자리를 다투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롤모델로 택했다. 미국인의 다수가 역대 가장 뛰어났던 대통령으로 꼽는 인물이다. 문 후보는 “극한 대결이 아닌 국민 통합의 리더십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이끌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안 원장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위기 속에서 경제를 재건하면서도 빈부 격차를 해소한 점을 평가했다.

물론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해상무역의 제해권을 장악한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 회사라는 식민지 수탈의 침략사를 연 절대왕정 시대의 군주였고, 루스벨트는 외곬의 행보로 궁지에 몰린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지켜내 결국 2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을 만들게 한 인물이다.

이들을 롤모델로 세울 때에야 다들 암을 버리고 명을 취하겠다는 다짐을 담았겠으나 의문은 남는다. 롤모델의 배려와 관용, 통합…. 대통령이 되면 정말 정적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오늘이라도 약속들을 할 수 있는가.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12-08-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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