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원예/최동로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장

[기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원예/최동로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장

입력 2012-09-21 00:00
업데이트 2012-09-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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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병은 병원에서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 따돌림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각박한 경쟁에서 오는 병은 식물을 키우면서 정서를 순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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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로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장
최동로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장
최근 통계를 보면 12.3%의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2009년도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 결과 서울 학생의 43.4%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 비율도 20% 가까이 된다. 이와 같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의 병은 해가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발달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연과의 접촉이다. 여러 연구에서 우울증, 비만, 주의력결핍장애와 같은 질병들의 가장 좋은 치료제는 자연과의 접촉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연에서의 경험은 그냥 멋진 활동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정신 건강을 회색에서 초록색으로 바꾸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며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이다.

그러나 자연과의 접촉을 통한 마음의 순화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공간이 제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으로 나가서 접촉하는 것이 어려우면 자연을 우리의 가정, 학교, 이웃으로 가져와서 어린이들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도록 도울 수 있다.

원예는 교육적으로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원예는 쉽게 배울 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이며, 이론과 활동을 적절하게 접목하기 때문에 한번 배우면 평생을 곁에 두고 실습할 수 있다. 꽃의 향기를 맡고, 식물을 만지면서 느끼는 감각과 지각 능력이 높아진다. 식물을 기르면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관찰력이 높아진다. 스위스 심리학자 피아제는 이러한 방법이 어린이들의 인지 발달에 가장 효율적인 학습형태라고 주장했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흙을 섞고 물을 주는 일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씨앗이 싹이 트면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모습에서 자기도 모르게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다. 식물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노력의 결과에 대한 희망을 생각할 여유를 줄 것이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정서적 안정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관찰력을 향상시키고 신체의 오감을 자극해 두뇌 발달에도 기여한다.

최근 농촌진흥청 시설원예시험장과 부산시교육청이 시작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원예체험 프로그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고사리손으로 흙을 만지며 화분을 만들고 채소와 꽃을 재배하는 온실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은 건전한 정서 함양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접촉을 통한 마음의 순화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의 괴로움을 알면서 왕따를 시키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모두 학업 스트레스 등 마음의 병이 만들어 낸 배려 부족이라는 병이다. 마음의 병은 병원에서는 치료되지 않는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싹이 돋는 것을 보고 배우는 생명의 환희에 대한 놀라움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며 감동하면서 배우는 풍부한 정서가 바로 마음의 병을 고치게 해주는 것이다.

2012-09-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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