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아크로폴리스 프로젝트/함혜리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크로폴리스 프로젝트/함혜리 논설위원

입력 2012-12-29 00:00
업데이트 2012-12-2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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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polis)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가리킨다. 폴리스에 높다는 뜻을 가진 접두사 아크로(acro)를 붙인 아크로폴리스는 군사적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을 기리는 신전이 있는 종교적인 장소로 활용됐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네를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을 두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쪽에는 그 유명한 아고라(agora)가 있다. 개방된 소통의 장소였던 아고라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민회(民會)와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다. 아크로폴리스가 정치와 군사·종교의 중심지였다면, 아고라는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생생하게 전개되는 시민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국방이나 정치문제를 두고 토론과 격론을 벌이는가 하면 사교 활동을 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던 의사소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덕과 선, 정의에 대해 논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아테네의 정치가와 학자들이 시민들을 향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식이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의 토론 문화가 있었기에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꽃필 수 있었다고 역사가들이 말하는 이유다.

서울대가 내년 3월부터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토론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일명 ‘아크로폴리스 프로젝트’다. 고전강독과 독서토론, 집중토론 코칭 수업으로 토론의 능력을 키운 뒤 토론대회에 나가 실전까지 치르게 한다는 구상이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수업을 하는 미국 토마스아퀴나스대학의 커리큘럼을 본뜬 것이다. 서울대가 이런 과정을 만들기로 한 것은 서울대 학생들이 높은 학업성취도에 비해 의견 전달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프로젝트의 의도는 좋지만 모두의 공감을 얻을지는 잘 모르겠다. 공자는 일찍이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사람치고 어진 이가 적다’(巧言令色鮮矣仁)고 지적한 바 있다. 가뜩이나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겉 꾸밈보다 내실을 다지면서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어떻게 하면 정의롭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2-12-2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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