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입양 수출 강국/박정현 논설위원

[씨줄날줄] 입양 수출 강국/박정현 논설위원

입력 2013-01-15 00:00
업데이트 2013-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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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올해부터 러시아 아동들의 미국 입양을 법으로 금지했다. 러시아의 조치는 아동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양국 간 외교분쟁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인 인권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사건에 연루된 관련자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자 러시아는 입양금지로 맞대응한 것이다. 러시아 고아 46명이 오기를 기다리던 미국인 부부들의 희망은 좌절됐다. 러시아는 아동 입양을 미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미국에 입양된 러시아 아동은 모두 4만 5000명으로 지난해에만 970명이 입양됐다. 러시아의 미국 입양 아동은 중국 2589명, 에티오피아 1727명에 이어 세번째다.

해외 입양이 까다로워지는 게 국제적인 추세인 모양이다. ‘아동 수출 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아동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 입양을 제한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 1955년 해리 홀트 부부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해외 입양의 역사는 1980년대 한 해 9000명으로 피크를 이뤘다. 2000년대에도 1000명을 넘었지만 2007년 해외입양쿼터제를 도입한 뒤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국 입양은 지난해에는 734명으로 러시아에 이어 네번째다.

우리나라는 작년 8월부터 해외 입양을 까다롭게 한 입양특례법을 시행하고 있다. 해외 입양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가입도 추진 중이다. 전체 해외입양자가 16만명이 넘는 나라로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특례법은 입양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입양 전에 먼저 출생신고를 하도록 했다. 출생정보와 관련한 입양아동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다. 입양아동이 성장한 뒤 친부모를 찾으려 해도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등 안타까운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막상 법이 시행되자 한 달 평균 60명을 넘던 해외 입양은 절반으로 줄었다. 입양을 보내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미혼모들이 공개 해외 입양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신에 종교단체 등에 몰래 아이를 갖다 버리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한 달 새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엊그제 1면에 생후 18개월 된 한국계 입양아 ‘해나’의 사진과 함께 입양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미국 가정에서 입양을 하기가 한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떠나는 ‘슬픈 어린이’들을 방치한 채 국격을 논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2013-01-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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