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연 정치부 기자
국가 위기관리 체계의 부실 탓이라고 한다. 적당주의와 반칙이 빚어낸 참사라고도 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맺은 사회계약이 정부의 무지로 위기에 처했을 때 계약은 파기될 수 있다는 게 ‘사회계약론’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바다에 묻고 절규하는 부모들 앞에서 이런 논리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도 싶다. 하지만 계약을 외면당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파기된 계약서를 누구에게 들이밀어야 할까.
대형참사 앞에서 공무원이란 거대조직은 아이들을 집어삼킨 바다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당장 사고수습과 직결된 정부부처 공무원만 2만 32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구조에 결정적이었던 사고 첫날 실제로 검은 바닷속을 누볐던 현장 인력 수는 알 길이 없다. 정부는 사고 첫날 해경 함정 28척, 헬기 7대, 구조인력 300여명을 투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썩 믿기지 않는다. 시스템 부재 속에서 참사와 미숙한 대응이 연발됐지만 가장 ‘시스템적으로’ 굴러가야 할 공무원 조직은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우왕좌왕했던 현장 공무원,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한 총리와 장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해 ‘안전’을 앞세웠지만 결국 실패한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속수무책의 공무원 조직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이 자꾸 걸린다. 그는 지금도 공무원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는다. 인수위 당시 국정목표인 보육·여성정책을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낼 때마다 담당 공무원은 한숨을 쉬면서 “왜 이렇게 저희를 귀찮게 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을 일컬어 “한 사람 한 사람은 엘리트일지 몰라도 그렇게 게으르고 이기적인 집단은 처음 봤다”며 혀를 찼다.
사고 수습 현장에서 기념사진 촬영 논란을 일으킨 안행부 고위 공무원은 해임됐지만, 어찌 보면 그 역시 거대 조직을 ‘보신’하기 위한 희생양일지 모른다. 고위 공무원 한 명의 사직서 뒤에 숨어 몸을 웅크린 채 파도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조직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정부의 개혁의지는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관련 기관 모두 “우리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마당에 국민은 생명줄의 컨트롤타워를 어디로 삼아야 할까. 2014년 4월 우리 아이들을 집어삼킨 건 바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옥죈다.
oscal@seoul.co.kr
2014-04-24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