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객원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입력 2010-06-08 00:00
업데이트 2010-06-08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일본 관료사회를 묘사하는 표현 중에 ‘아침 귀가’란 말이 있다. 아침 귀가란 첫째 철야근무한 뒤 아침 일찍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잠시 귀가하는 것, 둘째 정말 바쁠 때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택시를 대기시킨 채 샤워한 뒤 옷을 갈아 입고 사무실로 곧바로 출근하는 것, 셋째 금요일 밤 밤샘 근무한 뒤 토요일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일본 관료들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일본 관료사회의 가족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가족이란 ‘같이 사는데도 불구하고 심야 연장근무가 많아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 그러나 휴대전화로 꼬박꼬박 연락하거나 특별한 날에 선물 챙기는 것은 잊지 않고, 또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조그만 액자 안에 있는 사람’ 정도로 그려진다.

이미지 확대
김동률 KDI 연구위원
김동률 KDI 연구위원
인용문은 가족까지 희생해 가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일본의 공직사회를 그린 말들로, 하야시 유스케의 책 ‘가스미가세키의 규칙, 관료의 이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가스미가세키는 도쿄의 중심지로 일본의 중앙부처가 몰려 있는 동네, 우리로 치면 광화문이나 과천청사쯤 된다. 일본의 관료사회는 메이지 유신으로 하루아침에 낭인이 된 사무라이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고스란히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그 대상이 옮아 간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을 탄생시킨 그 관료사회는 이제 개혁의 대상으로 비난 받고 있다. 고이즈미, 하토야마에 이어 그제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 역시 ‘가스미가세키의 개혁’을 가장 큰 과제로 들고 나올 정도로 일본 관료사회는 비대해지고 부패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관료의 긍지에 비해 정작 자신들의 삶은 존재조차 희미해진 데 따른 극단적인 보상심리라고 한다.

일본 관료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세계 챔피언 일벌레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 수년간 일등이다. 물론 정부가 일벌레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인식해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실제 정부는 100만 공무원들에게 연가 사용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휴가 보내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물론 일반 회사에서까지 상급자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먹혀들지 않는다. 공무원 휴가가 23일이지만 실제 사용일은 평균 6일에 불과하단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료를 들고 국무회의에서 닦달했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2008년 2월 취임 이래 이 대통령 스스로 사용한 휴가는 달랑 4일에 불과했고, 모 장관은 장관 취임 후 단 하루도 가지 못했다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분석한, 한국인들이 휴가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부끄럽다. 많은 한국의 공무원과 회사원들은 직장 상사가 휴가를 가면 같은 기간 급히 가는 관례로 인해 자신과 가족만의 계획을 독자적으로 세우기 힘들다는 것. 그러다 보니 정작 휴식과 충전보다는 급히 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탓에 좋은 추억을 갖기보다는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공무원의 휴가를 책임지고 있는 담당과장조차도 지난해 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했다고 외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주말까지 합해 사나흘 고향에 다녀올 계획을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지 못했고, 고향의 가족들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한때 ‘stop work, smell rose’를 살짝 원용한 광고 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유행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끈 채 맘놓고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날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해 보인다. 모두가 휴가를 꿈꾸는 계절, 여름이 왔다.
2010-06-08 31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