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누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누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김동률 KDI 연구위원

입력 2010-07-06 00:00
업데이트 201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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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재수생, 아들이 고2까지 큰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용돈을 줘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께 받은 세뱃돈을 어떻게 썼는지 물어 본 적도 물론 없다. 아내가 따로 용돈을 준 것도 아니다. 흔히 크레덴자로 불리는 조그만 탁자가 마루 끝에 있고 그 탁자에 작은 서랍이 있다. 서랍 속에는 늘 만원권 서너 장, 천원권 서너 장, 그리고 동전들이 담겨져 있다. 수시로 확인해 보고 서랍이 비게 되면 채워 넣는 것은 아내의 일이다. 아이들은 돈이 필요하면 꺼내어 쓴다. 물론 사전 허락을 받거나 사후 보고를 할 필요는 없다. 또 아내와 내가 캐묻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알아서 돈을 가져다 쓰면 그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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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KDI 연구위원
김동률 KDI 연구위원
그러나 이같은 우리 집만의 용돈 관리는 그동안 서너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다. 서랍 속의 돈은 아들에게는 제 또래 동네 친구들의 군것질용으로는 충분했다. 아내와 나는 짐짓 모른 체 보고만 있었다. 군것질 돈이라는 게 그래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딸아이였다. 용돈을 무절제하게 쓰는 두 살 아래 동생을 호되게 나무라는 게 보통이 아니다. 아이들 간의 긴장국면은 열흘간이나 계속됐다가 조용해졌다. 서랍 속의 돈을 맘대로 쓰던 아들이 생각을 바꿨음은 물론이다.

몇 년이 흘렀다.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내게 항의해 왔다. 용돈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용돈을 받고 또 그것을 절약, 선물을 해야 뭔가 의미가 있고 그럴듯해 보이는데 서랍 속의 (부모가 넣어둔) 돈으로 선물사기가 영 맘이 켕긴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커서 결혼해서 그때 네 가족한테는 너희들만의 좋은 방식을 한번 만들어 보라고 당부하면서.

간단한 얘기이지만 이처럼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는 자유와 자율은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가 않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규제와 감시에 익숙해져 온 우리로서는 자율이 어색할 때가 종종 있다. 교통량이 뜸한 교외 길에도 유턴 허용 표지가 없으면 어디 후미진 곳에 가서 억지로 돌려 오거나 아니면 딱지 뗄 각오를 하고 맘 졸이며 방향을 튼다. 지시나 허용해 주지 않으면 쉽게 뭘 하기가 망설여진다. 군대서 ‘빳따’로 두들겨 맞으며 가장 많이 듣던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누구 맘대로”가 아니던가.

그러나 “누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선진국이 된다. 미국의 경우 좌회전, 유턴 등등은 금지 표시가 달리 없으면 맘대로 할 수 있다. 운전뿐만 아니다. 하지 말라는 규정만 없으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이른바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원래 무역 용어로 수출입 자율화가 인정된 제도에서 특정 품목에 대해서만 수출입을 제한하는 방식, 지금은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쓰이는 말이다. 특별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은 개인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사회구성원의 양식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제로 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많이 변했다. 좁아지는 도로에서 교차 진입이 정착되고 있으며, 수백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나서도 사고 소식은 없다. 사회가 몰라볼 정도로 성숙했다는 좋은 증거다. 문제는 정부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예전 그대로다. 기름값이 오르니 5부제를 하고, 위반하는 차는 공용주차장에는 얼씬도 말라. 에어컨은 몇 도까지 올라가면 틀어라 등등 기업과 국민들을 유치원생 쯤으로 여기는 강압성 대책들은 여전히 튀어 나온다. 일찍이 일제가 지배전략으로 전파한 ‘조선인은 스스로는 안 된다.’는 비하의식이 이 정부 주변에는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물론 네거티브 시스템에는 일정부분 부작용이 따른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는 이치란 세상에 없다. 썩은 가지를 일일이 쳐내는 것보다 나무 전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여 더 좋은 열매(사회)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발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2010-07-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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