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사진 산문] ‘온빛’이라는 빛

[박미경의 사진 산문] ‘온빛’이라는 빛

입력 2018-12-31 16:50
수정 2019-01-01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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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작 2018 온빛사진상 수상 ‘나의 이름’.
최우영 작 2018 온빛사진상 수상 ‘나의 이름’.
노모(老母). 1920년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홀로 방안에 섬처럼 놓인 어머니. 딸은 구순을 넘긴 이 어머니의 남은 날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절박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좋아서 늘 일상의 중심에 두고 살아온 그녀였다. 노모를 찍는 동안 어머니와의 정서적 공감이 깊어 갔고, 그렇게 쌓인 사진들은 사진상의 심사를 맡은 여러 사진가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온빛사진상’ 최초 수상작인 한설희의 사진 ‘노모’(老母)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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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69세 여성 아마추어 사진가의 작업을 초대 수상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기존 상의 틀에 환기창을 낸 ‘온빛사진상’은 결성 자체도 전에 없던 신선함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십시일반 자력으로 힘을 모아 제정한 ‘사진가가 주는 사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2011년 ‘노모’를 시작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 사진으로 기록하여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이루고자 한다’는 취지의 온빛상에 해마다 수많은 응모작이 줄을 이었다. 매해 연말연시면 수상작을 발표하고 전시로 선보이는데, 어느새 사진계의 행사를 넘어 일반인들조차 기다리는 소식과 전시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2018년에는 어떤 사진이 온빛상의 수상작이 됐을까? 일터에서, 학교에서, 동네 골목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흰 종이를 들고 선 사람들. 올해 온빛사진상 최우수상에 선정된 최우영의 사진 속 풍경이다. ‘이름은 그 사람이 지속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실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사진들은 ‘이름을 지킴으로써 스스로를 지켜 가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인 셈이다.

사진가 최우영은 일본에 계신다고만 들었던 친할아버지가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조부의 실체뿐만 아니라 재일교포들의 실상과도 처음 대면했다. 집안이 연좌제로 고통받아 온 사실도, 일본 법률상 무국적으로 간주되는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재일교포들의 현실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려움에 처한 조선학교의 상황도 알게 됐다. 카메라를 들고 재일교포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고, 올해로 광복 73주년이 됐지만,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식민 지배의 상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온빛이 그런 최우영의 사진을 선정해 ‘수많은 재일교포가 자신의 국적과 한글 이름을 잊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과 작업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번 온빛사진상에 총 79명이 지원했고, 최우영 등 다섯 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신설된 후지 뉴 플랫폼상을 받은 우해미의 ‘분홍 옷 입은 엄마’를 비롯해 권학봉의 ‘로힝야 난민캠프, 1년 후’, 박창환의 ‘동물원’, 신락선의 ‘프레임프레임588’까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계를 넘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온빛의 확장성이 드러나 보이는 수상작들이다.

‘따듯한 빛’이라는 이름 뜻대로, 연말연시를 온기로 밝히는 온빛상. 1월 전시와 더불어 2019년에는 또 어떤 사진들을 만나게 될지 새해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다.
2019-01-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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