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노부나가와 측근정치/김민희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노부나가와 측근정치/김민희 도쿄 특파원

입력 2014-12-20 00:00
업데이트 2014-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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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도쿄 특파원
김민희 도쿄 특파원
요즘 ‘노부나가 콘체르토’라는 퓨전 사극을 즐겨 본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한 고등학생이 우연히 일본 전국시대로 ‘타임슬립’ 해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오다 노부나가 대신 ‘대역 다이묘’를 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살점과 피가 튀기는 비정한 16세기 무장들과 21세기의 천방지축 고등학생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삐걱거림이 꽤나 재밌다.

‘가짜 노부나가’는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오다 노부나가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혼란기인 전국시대를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는 유명한 문구처럼 냉혈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짜는 정반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적과 내통한 것이 발각돼 “할복으로 죄를 씻겠다”는 가신에게 “죽지 말고 살아서 내게 더 충성하면 되잖아”라고 그 자리에서 용서를 한다. 이웃의 다이묘와 동맹을 맺기 위해 여동생을 정략결혼시킬 때에도 가짜는 고민을 거듭한다.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지”라며 결혼 없는 동맹을 추진했다가 화를 입기도 한다.

현대 시청자의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극화된 측면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점은 있다. 군주의 가장 큰 덕목은 가신을 휘어잡는 것이라는 점이다. 진짜 노부나가처럼 공포를 이용하든 가짜처럼 가신의 마음을 사로잡든, 가신을 자신의 휘하에서 완벽히 컨트롤한 뒤 그들에게서 최대치의 능력을 뽑아내는 것이 능력 있는 군주다. 오다 노부나가의 수하에는 훗날 일본을 지배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다. 이런 거물들을 거느렸다는 점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훌륭함은 드러난다.

500여년 전의 ‘가신 정치’는 현대 정치의 원형(原形)이기도 하다. 요즘 정치판에서도 훌륭한 리더는 측근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똑똑한 측근을 뽑는지는 리더의 안목에 달려 있고, 그 측근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는 리더의 능력에 달려 있다. 당장 일본만 봐도 그렇다. 2006~2007년 아베 신조 총리의 내각은 ‘도모다치(친구) 내각’이라고 불릴 정도로 측근을 많이 기용했다. 측근들이 돌아가며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제1차 아베 내각은 1년 만에 단명했다.

와신상담한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한 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총재 선거에서 자신의 라이벌로 나섰던 이시바 시게루를 ‘넘버 2’인 당 간사장으로 중용했다.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 등 자신이 기용한 각료들이 논란을 일으키자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각료들이 물러나고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던진 중의원 해산 승부수는 ‘신의 한 수’였다. 지난 14일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아베 총리의 입지는 더욱 확고히 다져졌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조금 답답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과 남동생이 권력 암투를 하고 있다느니,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이 비선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느니 하는 뉴스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온다. 측근을 두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이 수면 위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측근을 잘 통제하는 것은 훌륭한 군주의 최대 덕목이다. ‘노부나가 콘체르토’를 보면서, 문득 박 대통령이 떠올랐다.



haru@seoul.co.kr
2014-12-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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