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환경의날이었다. 이날을 기념해 한 업체가 진행한 캠페인에서도 ‘분리배출’ 대신 ‘분리수거’라고 했다. 행사는 ‘분리수거’ 문화 확산을 위한 것이었다. ‘분리수거’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분리배출’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분리수거’였다. 다른 곳에서도 주로 이렇게 쓴다.
‘분리수거’는 이 정책을 시행하는 쪽의 용어였다. 재활용품을 ‘거둬 가는’ 쪽의 언어다. 여기에 참여하고 ‘내놓는’ 대다수의 언어는 아니다. 보다 괜찮은 호응과 참여를 바라며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했다. 그랬다면 ‘배출’이었을 것이다. ‘수거’는 ‘배출’의 맞은편에 의미가 있다. 국민 참여와 반대로 가는 말이었다.
‘배출’하는 쪽을 향한 ‘수거’는 적절치 않은 도구를 든 것과 같다. 냉면을 먹는 데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꾸 흘리고 놓치게 된다. 두루뭉수리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과 행동의 발길만 꼬일 수 있다.
‘배출’하는 곳을 보고 ‘수거’해 달라는 건 미안한 일이다. ‘분리’해서 말해야 한다. ‘수거’로 퉁쳐서 얻을 것도 없다. 적용 대상이 선명해야 언어는 제 기능을 한다. 행사의 효율도 높아지고 취지도 밝아진다.
wlee@seoul.co.kr
‘분리수거’는 이 정책을 시행하는 쪽의 용어였다. 재활용품을 ‘거둬 가는’ 쪽의 언어다. 여기에 참여하고 ‘내놓는’ 대다수의 언어는 아니다. 보다 괜찮은 호응과 참여를 바라며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했다. 그랬다면 ‘배출’이었을 것이다. ‘수거’는 ‘배출’의 맞은편에 의미가 있다. 국민 참여와 반대로 가는 말이었다.
‘배출’하는 쪽을 향한 ‘수거’는 적절치 않은 도구를 든 것과 같다. 냉면을 먹는 데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꾸 흘리고 놓치게 된다. 두루뭉수리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과 행동의 발길만 꼬일 수 있다.
‘배출’하는 곳을 보고 ‘수거’해 달라는 건 미안한 일이다. ‘분리’해서 말해야 한다. ‘수거’로 퉁쳐서 얻을 것도 없다. 적용 대상이 선명해야 언어는 제 기능을 한다. 행사의 효율도 높아지고 취지도 밝아진다.
wlee@seoul.co.kr
2019-06-20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