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20대 국회 ‘세종 의사당’을 외면할 것인가/김경두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20대 국회 ‘세종 의사당’을 외면할 것인가/김경두 정책뉴스부장

김경두 기자
김경두 기자
입력 2019-06-03 17:32
수정 2019-06-04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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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두 정책뉴스부장
김경두 정책뉴스부장
5년 전 정부세종청사에 파견됐을 때다. 선배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농담인데, ‘세종 주재 기자가 위수지역을 벗어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중에 서울 올라올 생각 하지 말고, 세종에 정(情) 붙이고 열심히 취재하라는 주문이었다. 우스갯소리 속에 뼈가 있다고 느껴서인지 평일 저녁에 서울 약속이 있더라도 꼭 세종 숙소에서 잠을 잤다.

생뚱맞게 위수지역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정부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세종청사 소재 부처 장차관의 서울 사무실을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세종청사 집무실을 찾는 장차관들에게 ‘더 자주 내려가서 일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공무원 감찰 조직인 ‘공직기강협의체’도 서울 왕래가 잦은 세종청사 실국장들을 대상으로 출장 경위 등을 꼬치꼬치 캐고 있다. 가능하면 위수지역(세종청사)을 벗어나지 말라는 일종의 행정지침이나 다름없다. 느슨해진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서울과 세종으로 나누어진 행정 업무의 비효율성을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정부의 이런 노력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보좌관들마저 업무 협의차 수시로 부처 국장들을 호출하는 게 현실이어서 그렇다. 실무 과장이 대신 올라가면 ‘○○○ 의원님을 무시하는 것이냐’고 호통이 나오기 일쑤다. 그나마 말로만 깨면 다행이다. 예산 심의와 법안 개정 등에서 뒤끝이 작렬한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부처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들의 요구를 맞춰줄 수밖에 없다. 하반기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예산 시즌이 돌아오면 서울 출장을 최소화하라는 업무 지시가 내려와도 세종 공무원들의 ‘서울행’을 막기가 쉽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 여의도에서 먹고 자며 국회 업무를 본다.

현행법 테두리에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누구나 알고 있다. ‘길과장’과 ‘길국장’을 줄이고 정부와 국회 간 행정 비효율성을 제거하려면 ‘세종 의사당’(국회 세종 분원)이 필요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여야도 일찌감치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국회 세종 분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한층 강력하게 제시한 것은 이 공약이 그만큼 국익에 부합하고 유권자에게도 통한다고 여겨서다. 그런데 여전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 3년간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세종 분원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 법안은 3년 전 제출됐지만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이처럼 세종 의사당 설치에 뜨뜻미지근한 까닭은 의원들이 세종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생활이 마뜩지 않아서다. 국회사무처가 내놓은 세종 분원 설치에 따른 예산 절감과 생산증가 효과, 지역균형 발전에 대해선 애써 외면한다. 그렇다고 이삿짐을 싸야 하는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리도 만무하다. 명분은 거창하다. ‘국회를 바라보는 여론이 지금도 따가운데 조직을 키우고 예산을 낭비하는 세종 분원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나’라는 논리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로 민생 법안마저 내팽개치고 있는 국회가 내세울 명분은 아닌 것 같다.

20대 국회도 1년이 남지 않았다. 내년 4월 21대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연내에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여야가 다시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해 세종 의사당 설치를 21대 총선 공약으로 내놓는다면 그야말로 염치없는 짓이다. 사골도 아니고 삼탕까지 우려먹기에는 국민들 보기가 부끄럽지 않겠는가. 20대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golders@seoul.co.kr
2019-06-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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