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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사람과 향기] 우러나는 효도가 건강 장수의 비결이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우러나는 효도가 건강 장수의 비결이다

입력 2012-11-01 00:00
업데이트 201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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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이 지면을 통해 잠시 소개했던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8일 안동 낙동강변 농암 종택에서 열렸다. 아침에는 안개가 짙었으나 행사가 시작될 즈음엔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게 열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인근 각처 어르신들의 무채색 한복 차림들과 한 폭의 화사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 투명한 가을 햇빛 아래서 500년 전 자신의 ‘할배’가 그랬듯이, 60에 가까운 농암 종택 17대 종손이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며 어르신들을 모셨다. 또한 농암 선생이 안동부사 시절 고을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양로연을 베풀면서도 때때옷 춤을 추었다는 일화에 맞추어 안동시장도 함께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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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500년 전에 뿌려진 효행 씨앗 하나가 아직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그날의 행사는 우리의 전통 효문화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옛 선현들은 왜 효를 그리 중시했을까? 단순히 유교문화에 훈습된 결과일까? 애일당(愛日堂)은 조선 중기의 문인인 농암(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딱 500년 전인 1512년 자신의 집 근처에 지은 정자이다. ‘애일’(愛日)은 말 그대로 ‘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연로한 부모님이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날을 아껴 효도를 하겠다는 농암 선생 자신의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희구지정’(喜懼之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喜) 한편으로는 두렵다(懼).”고 한 ‘논어’의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버이가 오래 건강하게 살면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렵다는 것이다. 오래 사셨다는 것은 곧 그만큼 살아 계실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히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효심이 아닐 수 없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정자에 ‘애일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농암 선생의 마음이 딱 그러했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 행하는 효도, 옛 선현들의 삶에서 효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어떤 행동의 본질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고통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촉발되는 행동은 삶에 포만감을 준다. 농암 선생의 가족이 유명한 장수 집안이라는 사실은 이 점에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농암 선생의 부모는 부친이 98세, 모친이 85세를 살았고, 숙부 역시 99세를 살았다. 농암 또한 89세로 장수하였고 동생도 91세를 살았으며, 자식들 역시 많게는 86세부터 적게는 65세까지 그 옛날치고는 적지 않은 수들을 누렸다. 효는 단순히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향적인 헌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봉양을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웰빙 덕목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장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우리 시대 장수자들의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섭생과 의술의 도움에만 힘입은 장수문화의 뒷모습은 너무 황량하다. 노인 학대와 빈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노인층의 자살률 증가 등,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가 바탕이 되지 않은 요즈음의 장수시대가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들이다.

예로부터 장수는 오복(五福)의 첫째로 꼽혔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장수는 오히려 저주일 수 있다. 모두가 맞이하는 장수시대. 이 시대를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만드는 열쇠는 우리들 자신이 쥐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심으로 부모를 모시고, 자기 부모를 모시는 바로 그 마음으로 다시 이웃사람의 부모를 대하는 일, 우리 시대를 축복받는 장수시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작지만 힘 있는 실천들이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다음세대의 노인인 우리들 자신이다.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보면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012-11-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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