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웅 응칠교 편지] 이석교(里石橋)를 찾아서

[이기웅 응칠교 편지] 이석교(里石橋)를 찾아서

입력 2010-04-21 00:00
업데이트 2010-04-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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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웅 열화당 대표
이기웅 열화당 대표
지난 3월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사의 순국(殉國) 100주년 되는 날 바로 그 ‘순국의 시간’에 파주출판도시의 많은 이웃들이 응칠교(應七橋·안중근 님의 아명 ‘응칠’을 따서 이름 붙인 다리)에 구름처럼 모여 ‘응칠교를 아시나요’라고 이름 붙인 뜻깊은 답교(踏橋) 행사를 가졌더랬습니다. 그 ‘순국의 시간’인 10시에 파주의 소리꾼 박공숙 여사 일행이 응칠교 위에서 소리쳐 노래한 레퀴엠(鎭魂) 아리랑은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지요. 참석했던 많은 이들은 감격해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졌던 순국 기념행사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행사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떨어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만나야 할 두 지점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존재의 의미를 새삼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파주출판도시 안에는 지금까지 여섯 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첫째가 은석교(隱石橋), 둘째가 응칠교, 셋째가 다산교(茶山橋), 넷째가 이석교(里石橋)로서, 이 네 다리는 모두 이 도시와 연관되는 인물들을 기념하여 이름지어졌지요. 나머지 두 다리는 노안교(蘆雁橋)와 심학교(尋鶴橋)입니다. 갈대와 기러기로 대변되는 이 지역의 생태적 모습과 함께, 이 땅이 배산임수(背山臨水) 명당지(明堂地)임을 보여주는 심학산의 깊은 유래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들입니다. 이 여섯 다리에 이어, 확장을 서두르고 있는 출판도시 2단계 지역인 ‘책과 영화의 도시’에 여덟 개의 다리가 더 놓이게 됩니다. 그 다리들 하나하나에도 역시 기념비적인 이름들이 부여될 것입니다.

응칠교 행사를 마친 우리는, 출판도시 안의 또 하나의 다리 이석교를 찾았습니다. ‘이석(里石)’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의 아호입니다. 우리는 10년 전 응칠교를 포함해 여섯 개의 교량을 계획하면서, 그중의 하나를 김수근을 기념해 이석교라 이름지었습니다. 김수근의 제자이면서 이 도시의 건축 코디네이터인 승효상(承孝相)에게 그 다리의 난간 설계를 의뢰했지요. 승효상과 함께 이 도시의 건축설계지침을 수립했던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김수근의 제자들이었거나 그의 건축 이념에 영향을 받은 뛰어난 건축가들이었습니다. 이 건축가들에 의해 책마을의 도시적 이상은 구현돼 왔고, 앞으로도 출판도시의 미래상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칠 것임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이석교’라는 명칭은 출판도시의 건축정신을 대변할 터입니다. 건축에 관한 한, 김수근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겐 진정 기대어 논의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사반세기(四半世紀), 내년이면 25주기를 맞습니다.

이석 김수근은 과연 누구일까요. 안중근에 대한 앎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앎 역시 그리 깊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그를 더 깊이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黃斗鎭)은 어느 글에서, “김수근의 삶은 ‘건축’과 ‘건축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커다란 창(窓)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김수근의 위상을 나타내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도시의 건축 착공을 앞둔 출판인들과 건축가들은 무엇보다도 좋은 설계를 이뤄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출판도시 시범지구 건축설계 계약서’의 문안을 확정짓고, 이를 체결하는 행사를 2000년 4월26일 출판도시의 첫 건물인 인포룸에서 엄숙하게 가졌지요. 사업에 참여할 설계자들과 건축주들 모두가 모였습니다. 이름하여 ‘위대한 계약식’. 출판도시는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었고, 위대한 계약서의 문안에도 있듯이, “우리시대에 미만(彌滿)해 있는 건축에 대한 혐오나 출판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고, 이 땅에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세우기 위해” 이 도시는 계획되었고, 우리는 잠시도 초심을 놓치지 않고 오늘의 이 도시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김수근이 생각했던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믿습니다. 나는 응칠교에 서서, 이제 육안으로는 바라볼 수 없지만 배움의 정신을 통해 바라보는 선배의 생각과 함께 이 도시가 설계·경영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위대한 계약’은 김수근 선배와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2010-04-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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