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칼럼]분노와 애도를 넘어

[박재범 칼럼]분노와 애도를 넘어

입력 2010-04-29 00:00
업데이트 201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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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남짓 됐다. 승조원 46명의 꽃다운 생명이 ‘수중 비접촉 폭발’로 인해 스러졌다. 우리는 오늘 영결식을 끝으로 이들 희생자를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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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주필
박재범 주필


바야흐로 이제 사건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향후 파장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침몰 원인의 과학적 분석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6자 회담의 재개 문제, 북한의 관련성 입증, 국제적 제재방안 마련 등 고비마다 불꽃이 튀길 가능성이 높다. 사안마다 의견이 갈리고 힘겨루기가 빚어질 수 있다.

한국사람의 성정이 남을 인정하지 않고 다분히 다혈질이기에 혼란과 분열은 더 클 수 있다. 문제에 직면해 감정이 과잉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의 모색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럽이 아시아와 달라진 기점인 르네상스 때 데카르트의 방법론서설이 나온 것은 시사점이 크다. 난제일수록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뜨거운 분노와 들끓는 애도에 바탕을 둔 공감을 오래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차가운 분노와 차분한 슬픔을 다져야 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나라와 국민다운 수준을 보여야 한다. 먼저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국가 전체 차원에서 제기된 여러 과제를 정리해야 하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국민답게 합리적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이번에 도출된 가장 큰 과제는 국가와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 북한의 개입을 예단하거나, 미리 그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작위적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술자리 등에서 논란을 벌인 수많은 화제의 중심에는 불신과 의심이 관통돼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국민들이 정부를 못 믿는 속성에서 비롯된 점도 있지만, 정부와 군의 초기 대처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건 초기에 발생 시간이 오락가락한 탓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부정적 인상이 대두됐다. 이런 설, 저런 추정이 두서없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군이 과연 나의 아들을 지켜줄 역량이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을 야기했다고 본다.

물론 이는 정부와 군, 국민 세 당사자가 역사적으로 항상 직면하는 도전이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제법 잘 풀어나간 사례가 있다. 비근한 것이 바로 미 국방부이다. 미 국방부는 1975년 베트남전 패퇴 이후 패닉에 빠졌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은 제로베이스에서 자신들을 돌아봤다. 작전수행 능력보다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미 국방부는 이의 해소를 위해 30년 가까이 노력했다. 원칙은 대략 세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거짓을 국민에 말하지 않으며 즉답이 어려운 사안은 노 코멘트(no comment). 두번째로, 발표 사항을 좀더 깊이 알고자 원할 경우 단계적으로 더 깊은 팩트와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과 단위까지 공보관을 배치해 대외적으로 하나의 목소리만 나오도록 했다. 1990년대 사막의 폭풍 작전 등에서 국민적 저항이 의외로 적었던 이유다. 국가의 고민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미국이 벌인 전쟁에 대한 가치의 판단은 차치하고, 우리는 인간 본연의 속성인 의심과 불안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다루고 있을까. 공감과 지지를 위해 어떤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아픔 없이 성숙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국민과 국가의 현주소와 과제를 솔직히 드러내 주었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확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자성하며 역량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만 많고 배우지 않으면 허황해 위태롭다(學而不思 則罔 思而不學 則殆).’고 했다. 냉정하게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고 할 일엔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이다.

jaebum@seoul.co.kr
2010-04-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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