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케이퍼를 피클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케이퍼는 지중해에서 자라는 덤불 식물인 ‘카파리스 스피노사’의 꽃봉오리를 피클링, 즉 절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이 피클도 있고 무 피클도 있는데 꽃봉오리 피클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먹을 것 많은 지중해안에서 왜 굳이 수고스럽게 꽃봉오리를 따서 절이고 보존해서 먹게 되었을까. 그보다 대체 누가 맨 처음 이 작고 앙증맞은 꽃봉오리를 먹을 생각을 했을까.
케이퍼는 올리브와 마찬가지로 날것으론 먹지 못하고, 소금물이나 식초에 절여 떫고 쓴맛을 제거한 뒤 먹는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절임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향미를 갖게 된다. 케이퍼는 특유의 톡 쏘는 황화합물의 풍미가 두드러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퍼의 독특한 특성이 그것이다. 케이퍼는 단순히 신맛만 나지 않는다. 겨자 같기도 한 날카로운 매운맛과 짠맛, 신맛, 감칠맛 등이 얽히고설켜 있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수천년 동안 야생에서 채취하던 케이퍼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고작 2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풀리아, 캄파니아, 시칠리아 등지에서 재배되는데 가장 품질이 좋은 케이퍼가 생산되는 지역은 판텔레리아라는 시칠리아의 서쪽 작은 섬이다. 케이퍼와 건포도로 만든 디저트 와인이 특산품인 이 섬은 봄에 비가 충분히 오고 여름은 뜨겁고 건조해 케이퍼를 기르기 가장 좋다.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토양이라는 점도 케이퍼의 품질을 남다르게 만든다.
케이퍼 수확은 꽤나 수고를 요한다. 낮이 되면 기온이 올라 꽃봉오리가 생각보다 금세 피어나기 때문에 서늘한 아침에 따야 한다. 금방 덤불이 자라 매일같이 가지치기도 해 줘야 한다. 수확하고 나서도 말리고 절여야 하니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도 않다.
서양식 육회인 비프 타르타르 위에 얹혀 있는 케이퍼 베리. 케이퍼보다 훨씬 크고 꼭지가 달려 있는 케이퍼 베리는 케이퍼 꽃이 지고 난 후 열리는 과실로,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특히 안주로 인기가 높다.
케이퍼는 대개 식초에 절여져 나오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소금물에 담가 나오는 제품도 있다. 식초에 절인 케이퍼는 산미만 거슬리지 않는다면 바로 먹는 것이 가능하지만 소금에 절인 것은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는 수고를 해야 한다. 소금에 절인 케이퍼는 식초에 절인 것과는 달리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면서 좀더 순하고 고유의 향과 맛이 은은한 게 특징이다.
서양식 육회인 비프 타르타르 위에 얹혀 있는 케이퍼.
크기가 부담이라면 곱게 다져도 좋고, 산미와 향이 너무 강하다면 한번 볶는 등 익혀도 좋다. 볶음밥에도 꽤나 어울린다. 수분을 잘 짜낸 후 기름에 잠깐 튀기면 케이퍼의 향미와 함께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흥미로운 고명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연어와는 작별을 고하고 다양한 요리에 케이퍼를 곁들여 보도록 하자.
2021-10-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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