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열치열

[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열치열

입력 2019-07-29 17:10
수정 2019-07-3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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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초복(初伏)을 거쳐 중복(中伏)마저 지났다. 어느덧 장마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드디어 열대야가 나타날 거라고 아침 방송의 아나운서가 친절하게 알려 준다. 누가 복(伏) 중 아니라고 할까봐 아침부터 덥다. 그러나 예로부터 선조들께서 말씀하시길 더위를 차가움으로 다스리지 말고 같은 열(熱)로 다스리라 했으니 이른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고교 3학년 담임에게 여름방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학하고 일주일이 지났건만, 오늘도 평소처럼 7시 반까지 출근해 자기소개서 쓰기 특강을 하고, 40여명 학생의 자기소개서 틀을 잡아 주고, 두세 시간 간격으로 3명의 대입 수시 상담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창밖이 어둑해진다. 수시 상담 기록을 갈무리하고 막 퇴근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모란다. 아들이 상위 1%의 성적을 유지하는데, 특목고나 자사고를 지원할지 아니면 우리 학교와 같은(?) 일반고를 지원할지 고민이 돼 전화했단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고 퇴근을 앞두고 목소리마저 꽉 잠겨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지만,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설명을 드렸다. 특목고와 일반고의 장점과 단점, 그중에서도 특히 현행 입시 체제하에서 대학 진학과 관련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는지를 비교해 드렸다. 우수한 성적의 아이가 일반고로 진학했을 때의 장점을 역설했다. 그랬더니 우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나 교육활동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고 하신다. 다시 또 설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덧붙여 물었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 줄 수 있으며, 소위 명문대를 보내 줄 수 있겠느냐고.

경쟁 사회에서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답답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학입시라는 것이 특히나 내 아이가 열게 되는 경쟁 사회의 첫 문이 될 거라는 불안은 아이의 미래를 부모도 함께 찾아야만 한다는 절박감을 낳는다. 그것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단지 공교육 현장의 교사 입장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전혀 다른 자식 셋이 있습니다. 구태여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공부 잘하고 뭐든지 알아서 척척 해내는 모범생인 아이가 있구요, 별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별 특징이 없긴 하지만 나름 즐겁게 생활하는 아이도 있구요, 학교 다니는 걸 참 힘들어하면서 공부는 뒷전인, 마음 쓰이는 아이가 있어요. 학교는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아이가 모여 함께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아이들 모두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길러 내는 게 공교육 기관의 의무일 겁니다.”

그러자 그분도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게요. 언제쯤 우리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요. 저도 막상 우리 애가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하고 대학 입시가 코앞으로 닥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해지기만 하네요.”

언제나 그렇듯 ‘날것 그대로의 현실’과 마주할 때면 불편하다. 나에게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 내는 것’과 정작 눈앞에 보이는 ‘경쟁 사회’라는 현실이 주는 괴리가 명치께 어디메쯤에 걸려서 불편함으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불현듯 얼굴에 열감(熱感)을 느낀다. 공교육은, 학교는, 아니 교사는 이러한 개개(箇箇)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어떻게 조율해야만 성숙한 교육자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걸까.

이제 보니 옛말 그른 게 하나 없는 듯하다. 뱃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묵지룩하니 열이 올라오다 보니 오늘같이 더운 날 더운 줄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이열치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나도 안 덥다. 그러나 한 가지, 오늘 정신없이 바빠서 구내식당에 삼계탕이 나왔다는데 국물 한 모금 못 먹은 건 좀 아쉽다.
2019-0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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