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거 학교폭력을 불러내는 이유/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시론] 과거 학교폭력을 불러내는 이유/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21-03-29 22:38
수정 2021-03-3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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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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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여러분은 과거에 묻힌 일을 다시 호출해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짧게는 수년에서부터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기까지 꽤 오래전의 일이라면? 그것이 성인기 이전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이라면? 여러분은 어릴 때의 행동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과거의 학교폭력에 대한 폭로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유명 여자 배구선수의 불미스런 전력이 드러난 후 농구ㆍ축구ㆍ야구 등 다양한 스포츠 선수들과 가수ㆍ배우 등 연예인들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폭로에 연루된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반면에 일부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 시시비비를 법정에서 가리려는 이들도 있다. 그 진실은 차차 가려질 일이다.

피해자들은 왜 그 먼 얘기를 굳이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일까? 거기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보통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준다. 대개의 사람에게 그 기억은 잊고 탈출하고 싶은 고통이다. 이때 가해를 한 이들이 유명인이 돼 매스컴을 통해 피해자 앞에 재등장함으로써 피해자의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린다. 이런 점에서 학교폭력 사건은 피해자에게는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그 사건을 여기에 호출한 사람도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판단할 때 고려할 또 하나가 공정성이다. 우리는 폭력은 나쁜 것이고 그래서 폭력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고 배워 왔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팬들의 사랑, 부와 명성을 누린다는 것이 특히 피해자에게는 공정한 게임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피해자는 무너진 공정성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가해자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고, 필요하다면 그들이 부당하게 누리는 것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어두운 과거를 밝힘으로써 가해자에게 사회적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유명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대중의 평판을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해자인 그들에게 대중의 처벌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피해자로서는 이런 방법이 공정성을 회복하는 좋은 방안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조절하는 인간의 능력은 성인기에 도달해야 온전해진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폭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드러난 학교폭력은 대부분 예체능계 종사자에게 집중돼 있다. 이것은 학교폭력을 단지 철없는 시기의 행동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강력하게 함축한다. 그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그 문화적 특성을 비판적으로 따져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의 또 다른 원인을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도 있다. 오래전 우리 사회에는 군사문화라고 해서 엄격한 서열과 굴종을 강요하는 규범이 만연해 있었다. 이런 규범이 학교에 여전히 남아 있어 학교폭력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해자들의 학교폭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당되거나 합법적인 것이 아니고, 저절로 용서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폭력을 그 시대의 문화적 산물로 치부해 묻어 간다면 우리는 과거의 어떤 폭력도 합리화할 수 있다. 일제의 만행도 식민지라는 상황으로 합리화할 수 있고 과거 독재정권이 자행한 고문과 폭압도 그 시대의 통치행위로 합리화할 수 있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이루어진 폭력에 대해 법적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지거나 당사자와 관련 기관이 사과하는 것을 무수히 보고 있지 않은가. 학교폭력이라는 과거의 어두운 사건이 세상 밖으로 나와 그 민낯을 드러낸 것은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피해자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 또 가해자는 피해자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그동안 가져온 죄책감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학교교육 특히 예체능계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지침과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다. 그것이 이런 폭로를 한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일 것이다.
2021-03-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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