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메모 대화/정기홍 논설위원

[길섶에서] 메모 대화/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05-17 00:00
수정 2014-05-1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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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글은 요긴하다. 회의 중에 긴급함을 알리고, 옆 사람과는 사적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다. 둘만이 아는 내용이어선지 받는 쪽의 기분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가 소통을 대신하지만 ‘받는 정 주는 정’은 쪽지에 못 미친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이용한 쪽지글이 카메라에 잡혀 그 존재를 알려주는 정도다.

집안에서 ‘메모 대화’를 자주 한다. 다툼이 잦았던 젊었을 때 시작해 15년은 된 듯하다. 사랑 타령은 고사하고 말 붙이기가 싫을 때 주로 이용해 왔다. 내용이 격해도 시간이 지나서 보기에 화날 일을 줄이는 게 매력이다. 요즘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컵에) 물 가득’ ‘소량의 술도 뇌세포 파괴’ 등의 일상사다. 젊었을 때 내용은 좀 고약했다. ‘왜 안 했나’ ‘거짓말을 하나’ 등의 타박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열심히 써라.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치며 대충 마무리했었다.

마침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 셋 중 한 쌍은 하루에 30분만 대화한다고 한다. 소통 부재의 ‘가정 재난’을 읊조려야만 하는 요즘이다. 고작 30분에도 못 미치지만 그나마 메모글이 있어 다행인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05-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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