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먼저 2006년 7월 4일의 공론조사는 서울에서의 한·미 FTA 2차 협상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시행되었다.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사전 질문에 65.5%가 동의를 표하였다. 그런데 4시간에 걸친 전문가 토론을 보고 난 후 이 수치는 41%로 떨어졌다. 한·미 FTA의 비용에 대한 공감은 높아지고 편익에 대한 공감은 낮아졌다. 1년이 지난 2007년 6월 23일, 같은 방식의 공론조사를 또 실시하였다. 이는 2007년 4월의 협상 타결 이후, 6월 29일의 추가협상 타결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결과는 1년 전과 거의 같았다. 한·미 FTA에 대한 지지도가 사전 조사에서는 63%였으나 4시간의 토론을 보고 난 후엔 49.6%로 떨어져 1년 전에 비해 낙폭은 좀 줄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하락하였다.
왜 전문가 토론을 보고 나면 한·미 FTA에 대한 찬성이 줄어들까? 참석자들에게 물었더니 FTA의 편익에 대한 설명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데 비해 비용은 구체적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것은 참여한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라 FTA 논의의 근본적인 속성이다. 편익이라면 무역 확대, 산업 경쟁력 강화, 국제신인도 상승, 외국인 투자 확대, 대미관계 강화, 국내제도 선진화, 소비자 후생 증대 등이 될 것이다. 소비자 후생 증대를 제외하면 개인에게 와 닿기 힘든 거시적인 효과들이다. 반면 비용으로는 농업, 서비스업 등 한계산업 피해, 양극화 심화 등을 꼽을 수 있다. 피해 분야에 종사하는 개인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응답자들이 전문가 토론을 보고 난 후 편익보다는 비용에 더 심정적인 공감을 표하게 된 것이다.
대학생들이 4시간의 토론을 보고 답을 했다고 해도 이 역시 인상에 의존한 피상적인 답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미 FTA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반대여론이 형성되기 쉬운 속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런 점에서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여론조사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2006년에는 조사기관 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찬반이 5대5로 나뉘었으나 2007년 들어와서는 찬성론이 6대4 정도로 뚜렷이 우세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미 FTA 폐기에 대한 찬반이 42.8%대42.6%로 거의 같게 나타났다. ‘폐기 반대’에는 한·미 FTA에는 반대하나 체결 폐기는 심하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한·미 FTA에 우호적인 의견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셈이다. 이러한 여론 변화의 배경에는 ‘편익은 추상적이나 비용은 구체적’이라는 FTA 논의의 근본적인 한계에 덧붙여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 형성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 연애기간이 너무 길면 결혼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장점은 이미 알던 것인 반면 사소한 단점만 발견되기 때문이란다. 지금까지 정부의 입장은 한·미 FTA의 편익이 비용보다 크므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용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부가 한·미 FTA의 비용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그래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의지를 보다 진정성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한·미 FTA를 지킬 수 있다.
2012-02-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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