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여성적’ 대통령 논란/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여성적’ 대통령 논란/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입력 2012-11-05 00:00
업데이트 201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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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의 여성성 논란이 전개되고 있다. 논란의 질적 수준은 매우 거칠고 투박하여 듣기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소모적인 정쟁이나 공박, 비아냥, 키득거림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여성성 또는 사회의 여성성 문제는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유력 대선후보 세 명은 생물학적 성별을 넘어서서 모두 일정 부분 여성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 여성성을 지향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려 하고 있다. 강함·추진력·박력보다는 섬세함·배려·힐링 등의 가치를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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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문화연구자들은 지구촌의 다양한 사회 형태를 남성적 문화가 강한 사회와 여성적 문화가 강한 사회로 구별하곤 한다. 남성성이 강한 사회는 확고한 주장, 부의 획득, 일의 성취감 등에 가치를 많이 둔다. 반면 여성성이 강한 사회는 이웃을 돌보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 삶의 질을 고려하는 데 더 가치를 둔다. 남성성이 강한 사회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업성적이 좋은 학생을 최고의 학생으로 칭찬하고 대우한다. 학생들은 경쟁하고 성취하고,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여성성이 강한 사회에서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이런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 이상으로 리더십과 인격적인 성숙함, 성실성 등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해방 이후 정부가 수립되고 고속의 산업 성장을 거두고,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루는 동안 우리 사회는 특유의 한국적인 남성성을 발휘해 왔다. 경제 성장, 목표 달성, 성공 신화를 꿈꾸며 실천해 왔다. 2012년 대선을 치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남성적인 에너지가 이뤄낸 우리의 업적을 대견해하면서도, 그 불도저식의 남성적 추진력이 남기고 간 커다란 그림자, 상처와 희생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양극화와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복지, 배려, 힐링, 따뜻한 리더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대선 정국에서 우리는 남성성이 강한 사회에서 여성성이 강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강한 리더십보다는 힐링의 리더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보여준다. 여성성을 지향하는 사회로 이행하는 시점에서 ‘여성적’ 대통령 후보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지금, 시대적 과제 중의 하나는 선진국들이 문화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진 민주주의 사회는 우리가 걸어보지 못한, 배려와 성찰·관용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여성적’ 사회에 가깝고, 이런 사회를 이끄는 리더는 ‘여성적’ 대통령이 적합하다.

박 후보가 최근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이라는 부당한 비아냥을 받고 있지만, 기실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생물학적인 의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사회의 저력을 보라. 다만, 전형적인 남성적 독재 리더십을 보여준 아버지 박정희와 닮은 꼴이라는 연상을 극복하고 현 시점에서 필요한 진정한 여성적 리더십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가가 박 후보의 과제이고 대선 승리의 열쇠가 될 터이다. 문 후보는 개인의 도덕적이고 깨끗한 이력과 따뜻한 성품, 선한 이미지의 여성적 리더십으로 민주통합당의 개혁과 진보 노선과 결부되는 투박한 남성적 이미지를 녹여냄으로써 상당한 지지를 모으고 있다. 민주화 과정과 노무현 정부 시절 보여준 투박한 민주당 특유의 남성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부드러운 ‘선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해 내는 것이 문 후보의 과제다. 안 후보는 힐링과 배려의 여성적 리더십으로 대통령 후보로까지 급부상했다. 싸우고 부패하고 분열하는 남성적 문화가 망쳐 놓은 정치판을 여성성을 구현하는 안철수 리더십이 구원해줄 것을 사람들은 기대한다. 다만 실제 정치판에서 싸우다 기존 정치인의 남성적 리더십 이미지로 빠져드는 조짐을 경계해야 한다. 어찌됐든 ‘여성적’ 대통령은 바람직한 대세이다.

2012-1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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