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답정너’와 전문가/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답정너’와 전문가/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입력 2019-06-30 17:20
업데이트 2019-07-0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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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20대 때 일인데,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 친구의 외할머니가 오셔서 살림을 돌봐 주고 있었는데, 친구 여동생이 고기를 먹고는 싶지만, 생고기 덩어리를 만지기는 싫다며 외할머니에게 고기를 손질해 달라고 했다는 거다. 하필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계셨던 친구의 외할머니가 결국 고기를 썰어 주셨다고 한다. 친구는 동생이 이기적이라고 화를 내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제대로 고생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것을 일종의 질문으로 받아들인 내가 “네 동생은 고기를 썰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쭉 살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친구는 잠시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있더니, “너는 어떻게 내 바람과 반대되는 말을 할 수가 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은 이미 잊었을지도 모르는 저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대화를 하면서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들은 단지 본인들이 바라는 대답만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대화에서라면 친구가 기대하는 대답은 이기적인 동생이 훗날 ‘죗값’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동조하는 내용이지 네 동생이 결혼을 안 할지도 모른다거나, 여자라고 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거나, 네가 좀 고기를 썰지 그랬니 그러면 너희 외할머니가 다친 팔로 고기를 썰지 않으셨어도 됐을 텐데,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사교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원활한 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늘 정색하고 반박을 하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사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맞장구를 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만 이는 굳이 대화 상대의 ‘바람과 반대되는’ 말을 할 이유가 없는 사적인 상황에서의 이야기다.

곤란한 것은 직업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다. 즉 변호사로서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의 바람과 일치하는 말만을 해줄 수는 없다. 전문가라면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 의뢰인이 객관적이고도 바람직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듣고 싶어 하는 말뿐 아니라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하는 말 역시 해줘야만 한다.

하지만 때때로 변호사에게서도 본인이 바라는 말만을 그것도 즉각 듣고 싶어 하는 의뢰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소송의 경우라면 상당수 의뢰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이길 수 있다는 예측 내지 장담 더 나아가 확약 같은 것이다. 꼭 이긴다고 선뜻 대답해 의뢰인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싶지만, 소송의 승패를 미리 단언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바라는 얘기를 듣지 못하면 질문의 방법을 바꿔 가면서 거듭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번 묻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대답이 바뀌는 건 아니다. 이러면 듣고 싶은 답을 해주는 변호사를 찾을 때까지 물색을 멈추지 않는 경우도 있다. 100% 승소를 장담한다는 사무실이 있다거나 원하는 대로 의견서를 고쳐 준다고 했다며 의뢰인이 떠나는 일을 몇 번 당해 보면 전문가적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이 어리석은 일 아니냐 싶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공적인 사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전문가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경우다. 언론에서 쓰고 싶은 논조에 맞는 전문가의 발언만 골라 끼워 넣는 듯한 경우라거나 어떤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또는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를 동원하는 경우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이유는 그 전문적인 지식을 참고해 의견을 결정하거나 방향을 모색하고 수정하는 데 있는 것이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후 들러리로 세우기 위함은 아니지 않나.

때로는 이래서 전문가로 행세하는 게 전문인 사람들조차 생겨나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상대가 바라는 얘기를 해 주고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들 말이다.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 주는 친구는 위로가 되는 존재일 수 있겠지만 늘 좋은 친구는 아닐 수 있다. 하물며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 주는 전문가란 결국 사회에 위험한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2019-07-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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