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번역가
딸이 어렸을 때 지독하게 못생긴 믹스견 한 마리를 주워 오는 바람에 차마 버릴 수 없어 ‘장군’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고 한동안 키우다 나와 아이를 무는 바람에 다른 집에 보낸 적이 있었다. 여러 번 파양됐다 결국 버려져 마음에 상처가 많았던 장군이를 떠나보내기가 가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흰 머리가 성성한 엄마가 손에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미는 한편 이 혈기왕성한 강아지를 어찌해야 할지 한숨이 났다. 장군이를 그렇게 보냈으니 이번에 해피는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으로 기르고 싶어 결국 전문 훈련사에게 방문을 요청했다.
훈련사는 해피와 상호작용하는 우리 가족 관계를 물어보고, 해피의 나이와 몸 상태를 살펴본 후 문제를 진단했다. 그 결과 우리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시바견 특유의 늠름한 자태와 아기 강아지의 귀여움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해피에게 장군이에게 그때 못 준 사랑까지 모두 합쳐서 가족 모두 아낌없이 애정을 퍼부은 게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해피는 우리 집에서 자기가 서열이 1위라고 생각해서 거리낌없이 우리를 물었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사료를 너무 적게 줘서 먹는 데 집착하게 됐단다. 거기다 시바는 성격이 고양이 같아서 만지고 쓰다듬는 것도 싫어하니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그냥 든든한 맛에 키우라고. 맙소사, 까칠한 고양이를 10년째 키우면서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애정을 강아지에게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그렇게 놀라고 실망한 우리 표정을 보며 훈련사가 말했다. “다들 강아지를 예뻐만 하셨지 제대로 키우는 법을 몰라서 그러세요. 그 마음은 알지만 그 애정만큼 데려온 아이의 특성과 그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아셔야 해요. 시바는 원래 사나운 아이라 파양률이 70퍼센트에 달하는데, 그렇게 파양된 아이들은 안락사시키죠. 말이 좋아 안락사지 사실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는 거잖아요.”
그 말을 하는 훈련사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서 우리들은 허둥지둥 당황하면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잘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훈련사의 처방대로 해피의 사료량을 늘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해피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사료 주는 법을 바꾸고, 산책도 더 열심히 시키고, 전처럼 열정적으로 껴안거나 쓰다듬기를 자제하자 해피는 놀라울 정도로 온순해졌고, 더이상 물지 않았다. 해피가 가끔 맑은 눈동자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사랑이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부족할 때가 있구나.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알아 가고, 그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머리가 세기 시작한 이제야 알았다. 하긴 개만 그러하겠나. 이서원이 쓴 ‘나를 살리는 말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사랑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이지만…사랑의 완성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종류의 사랑을 원하는 만큼 줄 때 이루어진다.”
이 구절을 읽으며 지나간 사랑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생각했다. 나는 엄마로서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줬다고 생각했지만 받는 아이는 과연 그렇게 느꼈을까? 무엇보다 아이가 원하는 식으로 원하는 사랑을 줬을까?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다 된다고 나만 안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나 지나간 사랑들을 돌아보며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이에게 제대로 주지 못한 사랑을 한탄해 봐야 부질없다. 늦게라도 해피를 통해 사랑을 주는 법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라도 아이를, 내 옆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려 애써 볼 참이다.
2021-01-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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